10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영화들, 알고 보면 더 무서운 현실의 로맨스들

  • 입력 2016년 2월 22일 1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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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영화들
알고 보면 더 무서운 현실의 로맨스들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할 때 사랑 영화가 당긴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구원받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선 드물지만, 영화에선 남녀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절절한 로맨스를 완성한다. 과연 제정신일까? 본지의 시네마칼럼을 통해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온 최명기 박사와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파헤쳐봤다.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는 깔끔하고 밝아서 느낌이 좋았다. 각진 직선과 사각의 프레임들이 교차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안쪽 상담실로 안내받았을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천 장은 될법한 음악 CD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DVD 컬렉션. 소량의 LP판과 턴테이블이 다가올 인터뷰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해주었다. 미소를 띠면서 인사하는 최명기 박사의 시네마테라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Q. 음악, 영화 컬렉션이 대단하다. 환자와의 상담 시 활용되는지?

개인적으로 틈틈이 모은 것인데, 나에게 있어서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내방하는 환자들과 상담하면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증상에 맞는 영화들이 있다. 진료나 상담 중에 내용을 설명하며 권하고, 그다음 진료 때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Q. 시네마테라피가 임상적으로 환자분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신적으로 정화되는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영화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감정을 몰아가는 방법에선 탁월하다. 시각적, 청각적인 측면에서 전달도 잘되고……. 물론 시네마테라피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맞춰가며 같이 몰입하고 소통하면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감과 보고 나서의 행복한 여운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테라피가 아니겠는가?

Q.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그런데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들도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남들도 싫어하기 마련이다. 자기에게 정말 딱 맞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대부분 남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필이 꽂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Q. 그래도 영화에서는 좀 비호감적인 경우에도 사랑에 빠지곤 한다.

캐릭터가 그렇긴 해도 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용모에 대한 부분은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문화적 영향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때는 주로 생산성에 맞춰 상대를 본다고 한다. 원시시대 때부터 남자들이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가슴을 보고 나이를 가늠했다고 한다. 가슴이 처졌나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말이다.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머릿결의 영양 상태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를 볼 때 10분 안에 결정한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천 년의 역사가 깔려있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예쁘다는 것은 밸런스가 제대로 된 것이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볼 때 용모도 중요하지만 이미 들은 평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본 사랑도 있지만, 귀로 들은 사랑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역시 용모가 중요하다. 평판은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하다보면 우울증이나 조증, 정신분열증을 앓고 계신 분들이 사랑에 잘 빠진다. 아무래도 불안하고 외로우니까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애정망상이 있는 거다. 또 경계성인격장애라고 하는 증상이 있는데, 이런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참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사랑에 빠지게 된다.

Q.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로맨스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비포선라이즈> 포스터
▶영화 <비포선라이즈> 포스터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다들 속기 쉬운 영화다. 이 영화를 굉장히 수준 높은 영화라고 하는데 사실 전형적인 구애영화다. 동물이나 곤충들이 관계를 맺기 전에 춤을 추고 구애를 하듯이, 이 영화도 남녀가 밤새 밀고 당기며 사랑을 확인하려 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결국 두 주인공 남녀가 잤느냐 하는 거다. 영화는 두 남녀가 관계를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서로 한방이 부족한 거다.

Q. 하지만 에디터가 <비포 선라이즈>를 좋게 본 것은 남녀 사이에 섹스 없이도 멋지게 대화하고 밀당하며 감성을 소통해내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낯선 곳에서의 남녀 사이라는 환경도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관계가 관여되지 않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투사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내용은 남녀 간의 구애인데, 그것을 순수한 사랑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게 재미있다.

Q. 그럴 수도 있겠다. 마지막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영화 마지막에 햇빛에 의해 두 주인공이 다녔던 비엔나의 장소들이 다 드러나는데, 그 시퀀스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토록 로맨틱한 장소들도 결국 사람 사는 현실의 공간이란 점이 서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이터널선샤인> 포스터
▶영화 <이터널선샤인> 포스터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도 재미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첫눈에 반해 사랑하다 징글징글한 그 사랑을 회피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는 게 큰 설정이다. 그런데 그 이후 두 남녀가 다시 만났을 때 또 사랑하게 된다. 기억을 지워도 서로를 사랑했던 느낌이나 이런 것은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추억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심리학에서는 뇌에 남아서 영향을 준다고 본다.

기억이 남는다는 것은 완벽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볼 때 <이터널 선샤인> 속 커플은 매우 역설적이다. 서로가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기억을 지우는데, 사실 서로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 편이 더 좋다. 기억을 지우지 않아야 서로에 대한 안 좋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거다(웃음). 영화 속 커플은 기억을 지우는 순간 다시 만나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Q. 위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안 좋은 기억은 이별할 때 꼭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두 영화는 청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혹시 불륜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가?

▶영화 <언페이스풀> 포스터
▶영화 <언페이스풀> 포스터
다이안 레인의 <언페이스풀>이라는 영화가 있다. 행복한 유부녀가 어느 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다. 나라마다 외도 통계라는 것이 있다. 보통 남자의 외도율이 40% 정도 된다고 하고, 여성의 외도율인 20% 정도 된다고 한다. 외도는 선천적인 영향도 있는데, 5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현실의 배우자와의 관계가 숨 막혀 참을 수 없어 외도를 하는 타입이다. 부부지만 서로 마음의 거리가 다르다. 두 번째는 환상형인데 자신의 삶이 잘 안 풀리면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다. 세 번째는 두 집 살림 형인데 이 타입은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내와 헤어지면 바람피우는 여자와 재혼할 것 같지만, 다시 아내와 같은 여자와 재혼한다. 넷째는 섹스중독자형인데, 이런 경우는 부인이 맞춰줄 수 없으니까 밖에서 해결하는 거다. 끝으로 여자가 주축이 되는 외도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우울증이 있는 경우이고 <언페이스풀> 같은 영화가 그런 경우다. 바람이 심한 날, 다이안 레인의 우울한 마음이 외도로 연결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꾸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Q. 그런데 현실적으로 연애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감정만으로 어려운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영화 <뷰티인사이드> 포스터
▶영화 <뷰티인사이드> 포스터
맞다. 보통,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는 예쁘고 성격 좋으면 바로 사랑에 빠진다. 당연히 못생기고 성격 안 좋으면 싫어한다. 둘 중의 하나가 좋고 하나가 안 좋으면 갈등하면서 고민하게 된다.

여자도 남자의 재력과 성격 둘을 가지고 판단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는 신의 사랑과 유사하기에 더 빠져들고 동일시한다. 사람들은 결국 폭력영화나 사랑영화, 둘 중의 하나를 보는 것 같다. 폭력은 억지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카타르시스로 푸는 것이고 사랑 영화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환상을 주는 이유가 크다.

Q.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고 들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포스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포스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도 그렇고,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대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를 보통 심리학적으로는 ‘망상’이라고 한다. 약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헷갈리는 것이다. 이병헌의 경우는 대상이 한 번 바뀌지만, 한효주의 대상은 매일 바뀌는 경우다. <뷰티 인사이드>에서 한효주가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을 영화의 처음이라고 생각하면 위의 해석이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과대망상이 있으면, 사물을 바로 보기 힘들고 점차 본래의 형태를 잊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이 시력을 잃으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잊어먹게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이 변형되어 가는 것이다.

Q. 듣고 보니, 현실에서의 사랑은 쉽지 않다.

거기에 영화를 보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꾸고 싶어한다. 현실을 뭉개고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대상과 마음껏 울고 웃고 대리만족을 누리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Q. 영화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금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더욱더 영화에 집착했었다. 그것은 내가 굉장히 이성적인 인간이라 감성을 다루는 영화를 통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환자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언론에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말이다.

촬영협조 =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
글/취재 =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임준 객원기자, 촬영 = 윤동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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