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산행기] 아! 아름다운 눈꽃(雪花)보다도 후배 걱정에…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1월 14일 11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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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무릎으로는 무린데… 겨울 지나고 가시면 어때요?”

지난달 소백산 산행이후 평소에도 시원찮던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려 며칠째 한의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겨울 산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덕유산 등반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의원을 찾았더니 K원장은 잔뜩 겁부터 준다. 하지만 한 겨울 산꼭대기에 핀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를 보려는 사람에게 날이 풀리면 산에 가라니,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다.

그는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눈빛으로 내 무릎에 침을 꽂고 물리치료를 해줬다. 끝내 산행을 만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겨울산 한 번 안 가본 K원장이여, 네가 중봉 능선에 하얗게 핀 상고대를 어찌 상상이나 하리요. 난 네가 더 불쌍하다, 왜 그렇게 사니 인간아!’(참고로 기자와 K원장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요즘 평상시엔 못 느끼다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가끔씩 무릎에 찌릿하다. ‘아! 제발 토요일에 무사히 버텨줘야 할 텐데’ 무릎보호대까지 준비했지만, 사실 걱정이 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0일 오전 6시 아직 어둠이 드리워진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가장 어린 26세의 C여기자부터 60세를 훌쩍 넘긴 베테랑 산꾼 J사장까지 모두 9명이다. 일행은 혼다 오딧세이와 현대차 LF쏘나타 하이브리드에 나눠 타고 목적지인 무주 덕유산으로 향했다. 역시 많은 사람이 장거리를 움직일 때는 오딧세이만한 차가 없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대충 때우고 덕유산 삼공지구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20분. 오늘의 등반코스는 삼공지구를 출발해 백련사~향적봉~중봉~오수자굴~백련사~삼공지구로 돌아오는 21km 구간으로 정했다. 전체 코스가 조금 길어 걱정은 됐지만, 덕유산 등반의 정점인 향적봉~중봉 구간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삼공지구에서 백련사까지는 덕유산 등반에서 ‘마의 구간’으로 불린다. 5.6km의 시멘트 포장길을 지루하게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명산까지 와서 포장길을 걷는다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일이다. 그것도 종종 지나치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주면서 말이다. ‘아 과거엔 돈을 조금만 내면 삼공지구에서 백련사까지 봉고차로 실어다주던 시절도 있었는데…’

주차장에서 오늘의 간식과 컵라면을 각자에게 나눠주고 짐을 꾸렸다.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마친 뒤 출발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 매표소를 지나 채 1km를 가지도 못하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야만 했다. 겨우내 쌓인 눈이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꽁꽁 얼어붙어 곳곳이 빙판이었다. ‘아 벌써부터 아이젠을 신으면 오늘 무릎과 발목이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지루한 포장길을 1시10분가량 걸어 드디어 백련사(白蓮寺)에 도착했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라는 스님이 수도하던 중 흰 연꽃이 솟아 나왔고 그 자리에 이 절을 창건해 백련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절은 조용하고 아담했다.

오늘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에 아쉽지만 절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바로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산행의 시작이다.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는 2.4km로 비교적 짧지만, 경사가 심해 난코스에 속한다. 백련사가 해발 910m이고, 향적봉은 1614m이니 경사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겨울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오늘의 복장’은 모 재질 반팔 티셔츠 위에 두툼한 겨울 등산용 티셔츠를 입고 얇은 경량 다운재킷을 걸쳤다. 그 위에는 고어텍스 바람막이를 덧입었다. 하의는 얇은 동계용 내의에 겨울용 윈드 스토퍼 등산바지를 갖춰 입었다. 따뜻하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중량 다운재킷은 따로 챙기지 않았다.

날씨는 바람이 조금 불지만 전체적으로 포근해 영상 1℃~영하 2℃를 오르내렸다. 백련사를 출발하기 전에 바람막이는 벗어서 배낭 안에 넣었다. 다운재킷도 벗을까 하다가 바람이 차가워서 참았다. 몸이 조금 달궈졌다고 겨울바람에 그대로 몸을 노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간혹 춥다고 옷을 너무 두껍게 입거나, 반대로 몸에 열이 난다고 얇은 옷 하나만 걸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꺼운 옷을 입고 산에 오르면 체온 상승으로 땀을 많이 흘리게 돼 쉽게 지치거나, 약간의 휴식에도 땀이 식으면서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 거꾸로 옷을 너무 얇게 입을 경우에는 바람에 체온을 쉽게 빼앗기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지난 소백산 등반에서 처음부터 두꺼운 다운재킷을 입었다가 땀 때문에 크게 고생했던 후배는 오늘 비교적 얇게 입었다. 역시 경험은 중요하다.

한겨울 등산용으론 디터처블 재킷이 유용하다. 외피와 내비가 분리돼 날씨에 따라 1개만 입을 수도 있고, 부피가 작고 가벼워 입고 벗거나 휴대하기 간편하기 때문이다. K2의 ‘켈란2’는 대표적인 디터처블 재킷이다.

외피는 방수, 방풍, 투습력이 뛰어난 고어텍스 팩라이트를 사용했다. 팩라이트는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기존 제품보다 무게는 15%, 투습성은 40% 가량 항상 시켜 겨울철 전천후 등반에 인기가 높다.

구스다운을 80(솜털)대 20(깃털)으로 사용한 슬림형 내피는 독특한 2개의 표면으로 구성된 파워스트레치 원단을 사용했다. 안쪽은 투습이 좋은 소재에 부드러운 착용감과 편안함을 위주로 만들었고, 바깥은 마찰에 잘 견디는 소재를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다. 특히 움직임 많은 겨드랑이와 옆구리 부분을 스트레치 소재로 마감해 과격한 동작에도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이런 재킷은 하나쯤 배낭에 넣어두면 여름철을 제외 한 3계절 등반에 유용하게 쓰인다.

채 20분도 오르지 않았는데 땀이 나기 시작해 얼른 다운재킷을 벗었다. 반팔 티셔츠 위에 두터운 동계용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몸이 홀가분하고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몸에 열이 식으면 곤란하니 쉬지 않고 향적봉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지만, 복장을 가볍게 하니 발걸음 또한 절로 경쾌해진다.

눈꽃은 향적봉~중봉 능선에서 구경하기로 하고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올랐다. 드디어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인 향적봉대피소에 도착. 시간은 오후 1시다. 백련사에서 2시간20분이나 걸렸다. 예상보다 조금 늦었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하산 길에 오르지 않으면 자칫 산에서 어둠을 맞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나 일행의 점심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뒤에 처졌던 후배 1명이 보이지 않는다. 아뿔사. 대피소를 거치지 않고 향적봉 정상으로 바로 올라간 것이다. 수저를 놓고 향적봉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정상에서 아무리 찾아도 후배가 보이지 않는다. 큰일이다. 다시 일행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내려왔으나, 거기에도 오지 않았단다. 앞이 캄캄했다. ‘길이 어디서 어긋난 것일까? 먼저 내려갔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대피소 매점 앞을 다시 찾아보는데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후배가 눈에 들어온다. “어! 왜 여기 있어? 어디 갔었어?” 그는 정상에서 아무리 찾아도 일행이 보이지 않아, 방전된 휴대폰을 충전해 연락하기 위해 대피소로 내려왔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얼른 후배를 데리고 일행들이 기다리던 장소로 갔다. 급하게 점심을 준비해 먹이고 다시 향적봉 정상으로 향했다. 이때 시간이 오후 2시20분을 넘겼으니, 대피소에서 장장 1시간20분을 허비한 셈이다. 원래 계획은 40분 이내로 식사를 마치고 정상을 찍고 바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하산에 보통 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계획대로 내려가도 주차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5시40분이다. 해가 지는 시간인 것이다. ‘만약 겨울산에서 장비도 없이 해가 떨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줄을 서야할 정도로 많은 인파에 떠밀려 어렵게 정상에 올랐다. 향적봉 표지석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20m이상 늘어서 있다. 표지석 사진을 포기하고 주변에서 인증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50분. 아무리 늦어도 3시간 이내에 하산을 마쳐야한다.

발걸음을 재촉해 순식간에 향적봉~중봉 구간의 주목군락지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느긋하게 눈꽃을 구경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바로 내려갔다.

거의 뛰다시피 오수자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45분. 이대로라면 해가 지기 전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 잠깐의 휴식 겸 굴을 구경하고 간식을 먹은 뒤 곧바로 출발했다. 일행은 다리에 전기모터라도 장착한 듯 산길을 날다시피 내달렸다.

결국 6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정확히 5시45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산에 걸린 시간은 2시간55분.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한 결과다. 하지만 체력이 고갈됐던 후배 3명은 오수자굴부터 뒤쳐지기 시작해 6시를 조금 넘겨 주차장에 겨우 도착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다. GPS로 확인하니 오늘 총 8시간 15분간 21.2km를 걸었다. 무릎은 보호대 덕분인지 참을만했다.(산행기를 쓰는 지금은 다시 쑤시지만.)

지금부터 신나는 저녁식사시간이다. 오늘의 메뉴는 어죽과 도리뱅뱅이. 맛있기로 소문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원골식당(☎041-752-2638)으로 차를 몰았다. 피곤했지만 1시간 남짓 걸리는 식당을 찾아간 이유는 일행 중 어죽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신 ‘맛있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지금 이순간도 군침이 돈다.) 식당을 나서면서 “선배 다음 산은 어디예요?” 후배가 묻는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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