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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토요스케치]“선정적이라고? 책상 페미니즘을 거리로 불러낸 게 우리”

입력 2013-08-17 03:00업데이트 2019-07-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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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리스의 여성해방 전사 FEMEN, 페멘 창립멤버 인나 솁첸코 인터뷰
“우리의 신은 여성이다.”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어 젖혀라.” 아름다운 화관을 머리에 쓰고 정치적 구호가 가득 적혀 있는 상반신을 노출하는 페멘의 시위를 두고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페멘 측은 “기껏해야 옷을 벗고 구호를 외치는 평화시위를 왜 그렇게 폭력적으로 진압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쥔 채 우크라이나의 성매매 산업을 비판하는 토플리스 여성 전사들의 눈매가 매섭다. 페멘 인터내셔널 제공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맞아 새로운 ‘마리안(Marianne)’의 이미지가 들어간 우표를 공개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정신과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성상 ‘마리안’은 4년마다 새로운 모습이 공개되며, 이를 모델로 한 흉상이 전국에 세워지고 동전, 우표도 만들어진다.

올해 마리안 이미지가 들어간 우표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우표를 도안한 디자이너 올리비에 샤파가 트위터에 “새 마리안의 모델은 여성 여러 명의 이미지를 혼합한 것이지만, 특히 페멘(FEMEN)을 이끌고 있는 인나 솁첸코(24)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우파 보수 세력은 “우크라이나에서 모델을 수입해야 할 정도로 프랑스에는 아름답고 상징적인 여성이 없느냐”며 비난을 쏟아 부었다. 이에 샤파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해 투쟁한 마리안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페멘’ 회원이었을지 모른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솁첸코는 국제 토플리스 여성전사 그룹인 ‘페멘’의 창립 멤버. 그녀는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의 반(反)푸틴 록그룹 ‘푸시 라이엇’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뒤 당국의 체포령을 피해 야간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피신했다. 그녀는 지난해 11월 파리에서 페멘의 차세대 여성 전사를 길러내기 위한 국제 훈련캠프를 열었다.

올해 7월엔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정치적 망명을 허가받았다. 또한 새로운 마리안의 모델로 선정되는 겹경사도 얻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그녀에게 쏟아질수록 살해 협박 또한 더욱 거세졌다.
페멘 프랑스 지부의 인나 솁첸코 회장이 8월 초 지부 훈련센터에서 지부의 활동 등을 설명하고 있다. 뒤쪽의 그림은 가슴을 뜻하는 페멘의 상징(아래쪽 사진).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반푸틴 퍼포먼스를 벌이다 체포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프랑스로 건너왔다. 솁첸코 회장이 한 시위에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저항하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지난달 21일 새벽에 발생한 화재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페멘 프랑스 지부가 사용하는 건물의 3층 사무실은 외부에서 날아온 불꽃으로 전소됐다. 솁첸코가 이슬람 여성의 자유를 주장하며 페이스북에서 ‘반이슬람’ 논쟁을 벌이고 몇 시간 뒤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당시 “마녀들은 모두 불태워져야 한다”는 문자메시지와 e메일이 수십 통 넘게 도착한 직후였다.

“화재로 사무실에 있던 개인 서류와 공식 자료, 앨범, 카메라 등이 다 타버렸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프랑스로 도망쳐 올 때 여권과 휴대전화 하나 달랑 들고 이곳을 찾아왔다. 그런데 정확히 1년 뒤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렸다. 또다시 공식적인 서류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됐다. 미디어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나와 페멘이 처한 정확한 현주소라고 본다.”

솁첸코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2010년까지 키예프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처음엔 그녀도 반라 시위에 대해 반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에게 누드가 가장 중요한 ‘작업복’이라고 한다. 갑자기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내게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남자로부터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 내 의식은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매순간 조금씩 자라났다. 정확하게는 내각에 여성장관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항의하는 시위에 공무원 신분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뒤부터였다. 여성의 평화적인 토플리스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경찰을 보며 분노는 더욱 커졌고, 내가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자각했다.”

솁첸코는 2011년 12월 다른 회원 3명과 함께 벨라루스에서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를 조롱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납치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차에 태워 5시간 동안 산으로 끌고 가더니 밤새 때리고, 고문하며 협박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살아 있다면 평생 이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각오했다.”

그러나 페멘의 ‘반라 시위’에 대해 서유럽 페미니스트 그룹도 적지 않은 반감을 드러낸다. …첸코는 이런 비판에 어떻게 반응할까.

―페멘의 ‘토플리스’ 시위도 결국은 충격요법을 위해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우리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벗은 여자의 몸을 보면 오로지 섹스의 대상, 유희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러한 성차별주의자(sexist)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자 한다. 페멘이 옷을 벗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다. 우리는 여성의 몸이 정치적 의사표현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페멘이 전략적 슬로건으로 내세운 ‘성(性) 극단주의(Sextremism)’란 무엇인가.

“우리가 목표로 삼는 대상은 가부장적 제도, 독재정치, 억압적 종교권력이다. 성 극단주의란 말이 자칫 과격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극단주의(Extremism), 폭력주의를 대체하려고 성 극단주의를 내세웠다. 우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여성으로서 나의 섹슈얼리티가 바로 정치적 무기다. 우리는 옷을 벗고 퍼포먼스를 할 뿐이다. 누구를 해치지 않는다.”
올해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맞아 공개된 기념 우표 ‘마리안’(왼쪽)은 인나 솁첸코를 모델로 한 것이다. 페멘 프랑스 제공

―기존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도 페멘의 과도한 선정주의를 비판하는데….

“페멘은 책상 위에 머물던 아카데믹 페미니즘을 다시 거리로 나오게 하고, 대중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우리의 정체는 ‘행동주의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이 모든 장소에서 모든 주제를 다루게 하고 싶다. 우리는 거리의 활동가이며, 페미니즘 전사를 키우고자 한다. 기존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길을 가지만 결국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최근 페멘에 관한 최대 논쟁은 모든 종교에 대한 비판이다. 페멘은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동성결혼 문제를 두고 가톨릭 시위대와 충돌했다. 벨기에에서는 페멘 행동대원 4명이 한 대학 토론회에 참석 중이던 앙드레 조제프 레오나르 대주교에게 물을 끼얹었다. 벨기에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그가 “동성애자들은 독신으로 지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는 이유에서다. 페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관련이 깊은 러시아 정교회에 항의하기 위해 정교회의 나무 십자가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무슬림이여, 같이 벗자!’와 같은 자극적인 슬로건으로 중동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왜 페멘은 모든 종교에 반대하는가. 종교를 가진 여성은 페멘 회원이 될 수 없나.

“개인적인 내면의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교는 정치적 독트린, 사회적 시스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가 모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통제하는 상황이 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종교와 싸운다.”

―이슬람권 여성들은 페멘의 반라시위에 대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는 또 다른 서구중심주의적 접근이 아닌가.

“그 대목이 페미니즘 운동의 내부적인 고민거리다. 우리에겐 명예와 자부심일 수 있지만, 어떤 여성들에겐 자신의 몸을 정치적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 수치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죄스럽게 생각해서 가려야 하고, 숨겨야 하고, 보여주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없어질 때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살해나 납치 위협을 받을 때 두렵지는 않은가.

“페멘 전사들에게 ‘무섭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싸우는 것밖에 없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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