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움직임이 왜 이러지”… 분수 전하에 물리학계 관심 집중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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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 양자 변칙 홀 효과’ 주목
외부 자기장 없이 특정 배열만으로
전자 전하량이 분수 형태로 나타나…그래핀-2차원 물질서 잇따라 발견
양자컴퓨터 성능 개선에 활용 기대

얇은 탄소 동소체인 그래핀 다중 층에서 전자가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개별적으로 ‘분수 전하’를 갖는 것처럼 움직이는 현상이 관찰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얇은 탄소 동소체인 그래핀 다중 층에서 전자가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개별적으로 ‘분수 전하’를 갖는 것처럼 움직이는 현상이 관찰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엇갈리게 쌓은 그래핀에서 전자가 마치 ‘분수 전하’를 갖는 것처럼 움직이는 현상이 잇따라 관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분수 전하란 전자 하나의 전하량이 ―1이 아닌 ―2/3, ―3/5처럼 분수로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분수 양자 변칙 홀 효과(FQAHE)’라고 알려진 이 현상은 전자의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터에도 응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물리학자들이 잇따라 FQAHE 현상을 관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5월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몰리브덴 디텔루라이드(MoTe2)’라는 2차원(2D) 물질에서 FQAHE 현상을 관찰한 데 이어 올 2월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도 그래핀에서 같은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에 전 세계 물리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차원 물질은 원자가 평면으로 이뤄져 있어 전자가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물질을 뜻한다.

● ‘분수 전하’를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전자 발견

홀 효과는 전자가 직선운동을 할 때 수직 방향으로 강한 자기장을 걸면 전자가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휘면서 전류와 자기장 모두에 수직인 방향으로 전압이 걸리는 현상이다. 고전적인 홀 효과에서 전압과 저항은 자기장의 세기에 따라 선형적으로 변한다.

극저온 상태에서 자기장의 세기를 매우 크게 한 뒤 홀 효과로 인한 저항을 측정하면 어느 순간부터 불연속적인 계단 형태로 증가한다. 극저온과 고자기장 환경에서는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정해진 에너지 수준 사이가 멀어지기 때문에 전자들이 에너지 수준 사이를 ‘점프’하는 양자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양자 홀 효과라고 한다. 양자 홀 효과에서 양자화된 전자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면 서로 간섭하면서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장차운 KIST 스핀융합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이때 개별 전자의 전하량을 계산해 보니 ‘―2/3’ ‘―3/5’와 같이 분수 형태로 나타나는 ‘분수 양자 홀 효과(FQHE)’가 발견된 것”이라며 “작년 MoTe2와 그래핀 연구에서 나타난 FQHE는 외부 자기장이 없는 조건이었다는 게 주목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물질 구조 특성만으로도 ‘분수 전하’ 현상 발견

1982년 처음 발견된 FQHE의 핵심은 강력한 자기장이지만 당시 외부 자기장이 없어도 FQHE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후 2012년 중국 칭화대 연구팀이 얇은 강자성 필름에서 이를 처음 관찰했다. 외부 자기장이 없다는 특징 때문에 FQHE에서 ‘변칙(Anomalous)’을 넣은 분수 양자 변칙 홀 효과(FQAHE)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해 5월 쉬샤오둥 미국 워싱턴대 물리학부 교수팀은 얇은 MoTe2 물질 층 2장의 각도를 약 4도 비틀어 쌓아 FQAHE를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원자들의 특별한 배열 구조가 강력한 자기장 없이도 전자를 분수 전하처럼 행동하게 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올해 2월 쥐룽 MIT 물리학과 교수팀은 그래핀 덩어리에서 특정 배열의 그래핀 5장을 떼어내 질화붕소(BN)층 사이에 끼웠다. 그래핀과 질화붕소층은 둘 다 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된 패턴이지만 육각형 격자의 크기는 질화붕소가 약간 더 크다. 연구팀은 이런 미세한 불일치 패턴 덕분에 FQAHE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양자컴퓨터 성능 개선에 활용될 가능성

현재 과학자들은 정확히 어떤 구조에서 전자가 외부 자기장 없이도 FQAHE를 보이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해 계속 논의 중이다. 그래핀 외에 FQAHE를 보이는 다른 재료를 찾으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FQAHE는 양자컴퓨터의 한 종류인 ‘위상(Topological) 양자컴퓨터’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정보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쉽게 일어나는 양자 정보의 오류를 개선하는 게 핵심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 위상 양자컴퓨터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주도적으로 투자하는 양자컴퓨터 방식이다.

장 연구원은 “전자가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분수 양자 홀 효과를 통해 위상 양자컴퓨터에서 안정적인 양자 정보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또 “그동안 FQHE를 구현하려면 강한 자기장을 주어야 하고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까다로운 점이었다”며 “아직 그래핀에서 나타난 FQAHE가 양자컴퓨터에 쓰일 수 있는지 밝혀진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재료인 그래핀에서 FQAHE가 발견되어 물리학자들이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분수 양자 변칙 홀 효과
2차원 물질에서 움직이는 전자가 극저온 환경에서 강력한 수직 자기장을 받으면 양자화된다. 특정 조건에서 전자들이 상호작용하며 집단적으로 행동하면 각 전자의 전하가 분수 형태로 나타나는 ‘분수 양자 홀 효과(FQHE)’가 나타난다. 자기장 없이 원자들의 특별한 구조만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변칙(Anomalous)이라는 뜻을 더해 ‘분수 양자 변칙 홀 효과(FQAHE)’라고 한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분수 양자 변칙 홀 효과#전자 움직임#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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