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AI “감사하아아아어어어 ∼”… 인간과 오차율 ‘0’ 가까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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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창법으로 정인의 ‘오르막길’ 한국어로 불러
모창 AI 가창력, 예상 뛰어넘어… 자신만의 창법 지닌 AI가수 가능
가요계 판도 뿌리째 흔들수도

최근 SBS TV가 방영한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1편 장면들. 가수 옥주현 씨가 고 김광석을 모창하는 인공지능과 박효신의 ‘야생화’를 듀엣으로 불렀다(왼쪽 사진). 도입부에서는 미니 AI 로봇 70대가 비의 ‘깡’을 ‘칼군무’로 소화했다. AI는 박세리와 골프, 권일용과 범죄 심리분석 대결도 각각 이어간다. SBS 제공
최근 SBS TV가 방영한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1편 장면들. 가수 옥주현 씨가 고 김광석을 모창하는 인공지능과 박효신의 ‘야생화’를 듀엣으로 불렀다(왼쪽 사진). 도입부에서는 미니 AI 로봇 70대가 비의 ‘깡’을 ‘칼군무’로 소화했다. AI는 박세리와 골프, 권일용과 범죄 심리분석 대결도 각각 이어간다. SBS 제공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지난달 29일 SBS TV에서 방영한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 고 김광석(1964∼1996)의 목소리가 김광진의 ‘편지’를 불렀다. ‘편지’는 고인 사후 4년 뒤에 발표된 노래다. 김광석의 생전 가창을 딥러닝한 모창 인공지능(AI)이 음성만 부활시켜 새 노래를 불러낸 셈이다.

AI의 가창력은 기자가 예단한 실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김광석 AI’는 원곡과 달리 ‘날들을’의 세 글자를 3연음으로 균등해 불렀고 ‘감사하오’의 고음부는 꾸밈음을 넣는 대신 ‘하아아아어어어∼’ 하는 식으로 뽑아냈다. ‘사랑했지므아아안∼’(‘사랑했지만’)의 그 부분을 꼭 닮았다.

1991년 별세한 프레디 머큐리가 ‘We are the Champions’의 목소리와 창법으로 정인의 ‘오르막길’(2012년)을 한국어로 부르는 장면 역시 장관이었다. 방송 후 만난 전문가들은 모창 AI의 미래가 가요계의 판도는 물론이고 가수의 정의를 송두리째 바꿀 날이 코앞에 왔다고 입을 모았다.

○ 오차율 0%에 근접 중인 ‘김광석 모델 No. 3’

이번 프로그램에 AI를 제공한 ‘수퍼톤’은 모창 AI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업체다. 지난해 말 엠넷 ‘다시 한번’의 고 김현식과 터틀맨(본명 임성훈) 음성 부활도 이들 작품이다. 최희두 수퍼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클린 보컬 음원(반주나 이펙터가 들어가지 않은 가창 녹음)을 구하기 힘든 김광석 씨의 경우 AI에게 20곡만 훈련시켜 한계가 있었다. 아마추어 가수의 500∼600곡으로 배운 AI는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머큐리는 ‘Radio Ga Ga’의 실황 음원 하나로 훈련시켰다. 언어마저 달랐음에도 머큐리판 ‘오르막길’은 연구팀도 놀라게 했다.

‘김광석 AI’의 놀라운 점은 인간성에 있었다. 박자를 정박보다 미세하게 밀어 부른다거나 음정이 평균율보다 약간 떨어지는 부분이다. 사람 가수의 노래 음정도 디지털로 정확히 보정하는 시대에 들려준 AI의 아이러니였다. 최 COO는 “미세한 음정이나 타이밍의 어긋남마저 원곡 가수의 특징이라고 보고 AI에게 그대로 학습시켰다”고 설명했다. 수퍼톤에 따르면 이번에 출연한 AI는 가칭 ‘김광석 모델 넘버 3’(김광석 3)다. 약 2년간 두 차례 업그레이드해 실제 김광석과 오차율이 ‘0’에 근접했다고 한다.

‘김광석 3’는 한 곡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나눠 학습했다. 다음 1000분의 1초를 제대로 예측해 부르지 못하면 1000분의 1초를 되감아 재학습시켰다. 보컬 코치 역할을 하는 별도의 AI, ‘선생님 AI’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서다.

○ 개별 맞춤 노래하는 디지털 가수 데뷔 코앞

모창 AI의 미래는 흉내 기계를 넘어선다. 매력적 외모는 물론이고 자신만의 고유한 음성과 창법까지 지닌 디지털 휴먼 가수가 이르면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지금껏 사이버 가수는 그래픽으로 만든 외모로 가상성을 강조했지만 핵심 콘텐츠인 가창과 안무는 사람 성우와 댄서가 모션 그래픽으로 채워야 했다. 앞으로는 독자적 가창과 안무를 장착한 디지털 가수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유의 감성, 셀린 디옹의 고음, 김광석의 호소력을 딥러닝시켜 인류가 들어본 적 없는 강렬한 매력의 보컬을 만드는 것도 이론상으로 가능하다.

최 COO는 “콘서트 관객 1만 명이 ‘그대 사랑해’란 가사를 ‘희윤아 사랑해’ ‘Heeyun, I Love You’ 등 각자 1만 개의 맞춤형 노랫말로 전달받는 실시간 공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의 ‘디지털 휴먼’ 개발자는 “3D스캐너를 통해 디지털 가수가 내 방에서 노래하는 공연도 생길 것”이라면서 “AI 가수가 인간 가수와 경쟁하며 백가쟁명 하는 시대는 늦어도 5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광석#ai#옥주현#디지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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