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돼지가 ‘가출’하면 멧돼지 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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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가축돼지는 어떤 관계

멧돼지 개체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서식 공간이 줄고 천적이 없어서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위키미디어 제공
멧돼지 개체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서식 공간이 줄고 천적이 없어서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위키미디어 제공
2일 새벽, 서울 광화문에 불청객이 등장했다. 길이 1m, 몸무게 80kg가량의 멧돼지였다. 사람이 많을 때였다면 인명 피해 등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멧돼지가 왜 도심 한복판에 등장했을까. 멧돼지는 우리가 흔히 보는 돼지와는 어떤 관계일까.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1년 서울에서 멧돼지와 맞닥뜨린 시민의 신고로 119가 출동한 횟수는 43건이었다. 2015년엔 364건, 2016년엔 548건으로 증가했다. 5년 만에 12.7배나 늘었다.

피해도 발생한다. 광화문광장에 나타난 멧돼지는 택시와 충돌해 차량 범퍼가 파손됐다. 농가에서는 작물에 직접적 피해를 입는다. 농작물을 밟거나 밭을 파헤쳐 먹어치운다. 2015년 까치나 멧돼지 등 유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107억 원에 달하는데, 이 중 47억 원이 멧돼지 때문이다.



○ 멧돼지와 가축돼지, 차이점은?


멧돼지를 포함해 ‘돼지’라고 불리는 동물은 지구에서 분포 범위가 가장 넓은 포유류다. ‘돼지 유전체 해독 국제 컨소시엄’은 2013년 돼지의 조상이 언제 나타났는지를 밝혀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6년에 걸쳐 돼지 게놈을 분석해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돼지의 조상이 신생대 초기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돼지의 조상은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났고, 여기서부터 현존하는 덤불돼지나 수염돼지, 멧돼지 등 다양한 돼지 종으로 분화했다.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난 돼지의 조상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멧돼지가 널리 퍼졌다.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야생 멧돼지를 사육해 고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멧돼지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운동량이 많은 데다 사나워 가축으로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쉽게 사육할 수 있도록 멧돼지 품종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고기 맛이 좋은 두록 종이나 새끼를 많이 낳는 요크셔 종, 교잡용 암컷으로 많이 쓰이는 랜드레이스, 흑돼지로 잘 알려진 버크셔 종 등이 멧돼지를 식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현재까지 만들어진 가축돼지 종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등록된 품종만 1200종에 달한다.

○ 가축돼지와 같은 듯 다른 멧돼지


가축돼지는 멧돼지에서 갈라져 나온 한 종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축돼지가 야생으로 돌아가면 멧돼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박준철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양돈과장은 “가축으로서 돼지는 사람의 관리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개량돼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몸집을 빠르게 불리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도록 개량됐기 때문이다. 지방층도 기름 부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2.5cm 정도로 얇게 만들어 스스로 체온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멧돼지와 가축돼지는 종이 같기 때문에 교배를 하고, 새끼를 낳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교잡종들은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박 과장은 “멧돼지와 가축돼지 사이에서 교잡종이 생길 경우 멧돼지의 야생 적응력이 유전된다면 야생에서도 생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멧돼지가 하산하는 이유는?


멧돼지는 성체가 되면 몸무게가 200∼300kg에 이르며 천적도 드물다. 과거엔 호랑이나 늑대 같은 대형 육식 동물이 멧돼지를 사냥하며 먹이사슬에 균형을 이뤘다. 천적이 사라진 요즘, 멧돼지의 개체 수는 계속 늘고 있다.

개체 수가 늘더라도 먹이가 풍부하면 민가로 내려올 일은 없다. 문제는 먹이가 부족해질 때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과 이른 봄, 번식이 시작돼 먹이를 많이 먹어야 하는 가을이면 먹이를 찾아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 영역 싸움에서 밀린 멧돼지가 사람 사는 곳까지 오기도 한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적정 멧돼지 수는 km²당 1.1마리 정도다. 국립생물자원관이 발표한 ‘2015년 야생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멧돼지 밀도는 km²당 5마리다. 2011년 4마리, 2013년 4.2마리로 꾸준히 늘고 있다. 멧돼지와 사람이 공존하려면 개체 수 조절이 필수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멧돼지#가축돼지#멧돼지 출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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