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나는 사람의 나이로 백수를 누린 최고령 쥐라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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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연구의 메카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광주 ‘고령동물생육시설’을 가다

국내 최장수 쥐 국내에서 최장수 기록을 가진 쥐. 태어난 지 32개월 됐으며 사람으로 치면 백수를 누린 셈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국내 최장수 쥐 국내에서 최장수 기록을 가진 쥐. 태어난 지 32개월 됐으며 사람으로 치면 백수를 누린 셈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쥐들의 파라다이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달 7일 광주 전남대 캠퍼스. 이곳에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광주센터가 운영하는 ‘고령동물생육시설(AFAS·Animal Facility of Aging Science)’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70세가 넘는 ‘노인 쥐’들이 여기 모여 있다. 구본철 기술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령 동물을 키우는 곳”이라며 “여기선 쥐가 ‘상전’”이라고 말했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고령화 사회 진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최근 고령 쥐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쥐는 사람과 유전체가 99% 동일하고, 노화와 퇴행성질환의 양상이 비슷해 노화 연구의 핵심으로 불린다.

고령인 탓에 외국에서 수입했다가는 자칫 스트레스로 사망할 수 있어 국내에서 직접 기르는 수밖에 없다. 구 기술원은 “최고령 생쥐는 32개월”이라며 “지난해 12월 외부 기관에 분양됐다”고 말했다. 생쥐의 평균 수명은 18개월로 이 정도면 백수(白壽)를 누린 셈이다.

‘실버 쥐 아파트’ 사람으로 치면 70세가 넘은 ‘노인 쥐’들이 모여 있는 고령동물생육시설 내부. 총 60채의 우리로 이뤄진 아파트 한 동을 균이 없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한 달에 약 500만 원이 들어간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실버 쥐 아파트’ 사람으로 치면 70세가 넘은 ‘노인 쥐’들이 모여 있는 고령동물생육시설 내부. 총 60채의 우리로 이뤄진 아파트 한 동을 균이 없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한 달에 약 500만 원이 들어간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 쥐의 ‘실버타운’ 구축에만 2억 원

AFAS에 들어가는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전용 슬리퍼를 신고 바닥을 한 번 더 소독했다. 문 안에 들어서자 에어샤워기가 15초 동안 옷과 피부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냈다. 이렇게 깔끔을 떨어도 방문객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사육실은 문 2개를 더 지나야 나타난다. 출입 권한이 있는 사람은 AFAS 안에서도 5명뿐이다. 사육실에 들어가려면 멸균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크, 장갑, 덧신을 착용한 뒤 에어샤워를 60초 더 하고 전용 신발까지 신어야 한다.

문 너머로 보이는 사육실은 아파트 형태였다. 한 줄에 우리 6채씩 10층 아파트가 한 동이다. 우리에는 생쥐 5마리가 함께 산다. 젖을 떼자마자 암수로 나뉘어 평생을 함께 지낸다. 옆방에는 생쥐보다 몸집이 큰 집쥐가 사는 아파트도 있다.

아파트 내외부 시설을 하나씩 뜯어보면 ‘럭셔리’ 자체다. 우리마다 미세먼지를 99.9%까지 걸러내는 헤파필터에 개별환기시스템(IVC)까지 달려 있어 우리 하나가 오염되더라도 나머지 우리는 안전하도록 설계됐다.

사육실 내부는 사시사철 온도 21도, 습도 50%를 유지한다. 사육자가 들어올 때 나쁜 공기가 따라 들어오지 않도록 사육실 전체 기압을 1028hPa(헥토파스칼)로 맞춰 표준기압(1013hPa)보다 살짝 높였다.

먹고 마시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물은 역삼투압 필터로 불순물을 완벽하게 걸러 제공하고, 먹이뿐만 아니라 바닥에 깔아주는 톱밥까지 130도에서 30분간 멸균 소독한 것만 사용한다. 혹여 옆 우리의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우리 사이의 간격도 충분히 떼 놨다. 모든 설비에 전기가 들어가는 만큼 정전에 대비해 36시간 가동할 수 있는 비상 발전기도 설치돼 있다.

구 기술원은 “이런 아파트 서너 동이 들어가는 방 하나를 구축하는 데 약 2억 원이 들었다”며 “아파트 한 동 유지비만 한 달에 500만 원 가까이 든다”고 말했다.

○ 대통령도 사육실엔 못 들어가

사육실 못지않게 사육자의 조건도 엄격하다. 생쥐와 집쥐를 담당하는 사육자가 따로 있다. 고유의 균을 다른 종의 쥐에게 옮길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생쥐 사육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생쥐 사육실에 비상사태가 생기더라도 집쥐 사육자가 대신 들어갈 수 없도록 사육자들은 24시간 출동 대기 상태다.

사육자가 되는 과정도 만만찮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채용 자격에서 제외된다. 신입은 혹독한 3개월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 문원진 분석연구부장은 “AFAS가 문을 연 지 4년이 넘었지만 집에서 다람쥐를 키우는 탓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며 “작은 오염에도 늙은 쥐는 쉽게 죽을 수 있는 만큼 대통령이 방문해도 사육실엔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생쥐 한 마리당 가격은 월령(月齡)에 따라 다르지만 10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워낙 애지중지 키운 덕분에 고령임에도 털이 빠지지 않고 윤기까지 흘러 대부분 ‘동안’이다.

AFAS의 목표는 0∼24개월령까지 월령마다 암수 60마리씩 키우고, 그 이상 나이든 쥐도 암수 20마리씩 보유하는 것이다. 쥐 한 마리가 태어나서 늙어가는 과정 전체를 추적하기 위해 생쥐 전용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와 행동분석기도 구비했다. 문 부장은 “전라남도는 고령자 비율이 21.4%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면서 “AFAS도 이곳에 위치한 만큼 노화와 퇴행성질환 연구의 메카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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