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자는 최고의 분석관… 8cm 철판 너머도 훤하게 꿰뚫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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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대한민국 국새와 얽힌 ‘21세기판 아르키메데스’ 사건으로 떠들썩한 적이 있다. 제4대 국새 제작자가 국새에 들어갈 금의 일부를 빼돌렸는데, 겉모습만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금관의 위조 여부를 밝히기 위해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나서서, 위조 금관을 물 속에 넣어 사건을 해결했다. 21세기 국새 위조 사건에는 ‘중성자’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국새에 중성자를 쬐어 구성 성분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이다. 중성자는 제3대 국새의 내부 미세 균열을 찾아내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중성자는 국새를 넘어 우리 생활 곳곳으로 활용의 폭을 넓히고 있다.

○ 중성자, 수소차 개발부터 원전 안전까지

실제로 중성자는 국새의 내부 균열을 볼 때처럼 전투기 엔진 결함을 탐지할 때도 쓰인다. 일반적으로 몸속을 볼 때는 X선을 이용하는데, X선은 금속같이 무거운 물질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엔진 표면 결함을 볼 때만 쓰일 뿐, 부식이나 미세 균열과 같은 내부 결함을 확인할 때는 중성자가 쓰인다.

또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용접된 부위가 안전한가를 판단할 때도 중성자를 활용한다. 중성자는 8cm 두께의 철판도 거뜬히 투과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만든 선박들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수소자동차 개발에도 중성자가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수소연료전지가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물이 어디에서 생기며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중성자로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중성자를 부탁해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중성자는 어떤 방법으로 얻을 수 있을까.

원자로 속에서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서 중성자를 얻는 ‘핵분열법’과 높은 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를 특정 물질에 조사해 원자핵에서 쪼개져 나오는 중성자를 이용하는 ‘파쇄중성자법’으로 얻는다.

국내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핵분열법으로 중성자를 얻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는 세계 10위권의 고성능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로 중성자를 얻고 있다. 1995년 하나로가 처음 설치될 당시에는 물질의 구조나 특성을 밝히는 데 많이 사용됐다. 하나로에서는 매초 1cm²마다 2000조 개의 중성자가 움직이는데, 이를 핵연료나 소재에 쪼여 나타나는 반응을 관측하는 것이다.

2009년에는 중성자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냉중성자’ 연구 시설을 구축했다. 중성자를 액체수소에 통과시키면 에너지가 낮고 파장이 긴 냉중성자가 나오는데, 이는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시료에 냉중성자를 쪼이면 내부 구조를 3차원으로 관찰할 수 있다. 실제로 냉중성자로 뇌에서 콜레스테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밝혀 뇌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용남 원자력연 중성자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은 “하나로에 설치된 중성자 연구 시설에는 국내외 산학연 기관의 참여가 끊이지 않는다”며 “나노·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소재와 의약품 개발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중성자란 ::

흔히 ‘핵’이라 불리는 원자핵 안에는 중성자와 양성자가 함께 있다. 중성자는 양성자와 질량이 거의 같지만 전기를 띠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원자 바깥에 있는 전자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 깊숙이 들어가 내부 구조와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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