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 “月 1200달러 주는 美떠나 ‘80달러’ 서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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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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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학 걱정돼 귀국… 다들 미쳤다 했죠”
■ 물리학계 ‘살아있는 역사’

“벌써 60년이 흘렀나요?” 한국물리학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물리학계의 원로인 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가 옛일을 회상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벌써 60년이 흘렀나요?” 한국물리학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물리학계의 원로인 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가 옛일을 회상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6·25전쟁 휴전을 몇 달 앞둔 1952년 12월 7일.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한 건물에 물리학자 34명이 모였다. 한국물리학회의 창립 순간이다. 올해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물리학회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물리학회 12대 회장과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한 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85)를 만났다.

1927년생인 고 교수는 광복이 되던 1945년 경성제국대 예과에 입학한 뒤 1947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상태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피란을 가지 못해 숨어 지내는 등 고생하다 결핵을 앓기도 했다.

“1953년 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강단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때마침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유학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난 고 교수는 1963년 미국 네브래스카대에서 이론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돈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을 후배들 걱정 때문이었죠. 그런데 당시 한 달에 1200달러를 받는 미국을 떠나 80달러밖에 못 받는 서울대로 가겠다니까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

막상 돌아오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여전히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학생들에게 더 큰 곳에서 공부하라며 유학을 ‘종용’했다.

“어떤 해는 졸업생 40명 가운데 30명이 유학을 가기도 했죠. 임지순 서울대 교수,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도 제가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한국물리학회는 1961년 우리나라 첫 학술지인 ‘새물리’를 발간했는데 고 교수는 1964년 편집간사를 맡았다. 그는 “당시에는 학술지에 실을 논문이 없어 항상 고민이었다”며 “1970,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물리학계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교수는 이휘소 박사를 회상했다.

“유학하던 1963년으로 기억하는데요, 한 학회에서 이휘소 박사를 봤습니다. 당시 28세인 ‘벤저민 리’란 청년이 발표를 하는데 대단합디다. 처음엔 중국계인 줄 알았어요.”

당시 깊은 인상을 받은 고 교수는 이 박사와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그의 추천으로 이 박사는 1974년 서울대에 대한 국제개발처 교육차관 타당성조사단의 일원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깝게 지내던 이 박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고 교수에게도 충격이었다.

포항공대(포스텍) 초대 총장인 김호길 교수에 대한 기억도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였던 김 교수는 귀국 후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을 설득해 세계에서 5번째로 제3세대 가속기를 건설토록 했다. 그러나 완공을 몇 달 앞둔 1994년 김 교수는 사고로 세상을 떴다. 고 교수는 김 교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전을 ‘가속’시켰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1992년 강단을 떠났다. 지금은 우리나라 물리학계를 뒤돌아보는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니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살아 계신 분들도 건강이 안 좋더군요. 그래서 저라도 험난했던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자취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고윤석 명예교수#서울대#한국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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