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 기자의 메디 Talk Talk]학교폭력, 학교와 정부의 역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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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성향 고위험군 학생들 사전에 파악해둬야

인제대 의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은진 교수가 아이의 정서와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제공
인제대 의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은진 교수가 아이의 정서와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제공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는 가정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학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쉽다.

부모 교사 정부는 학교폭력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난주 ‘학교폭력에 대한 부모들의 오해’ 편에 이어 ‘학교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주에 이어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곽영숙 이사장(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과 김붕년 학술이사(학교폭력TFT 위원·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도움말을 줬다.

▽이진한 기자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모는 대개 흥분한 나머지 학교에 찾아가 감정적으로 대처합니다.

▽김=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정말로 어려운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섣불리 비난 섞인 충고를 하면 곤란하죠. 가령 “너도 한 대 때렸어야지” 또는 “네가 약점을 고쳤어야지”라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비난받는다고 느끼면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아이 스스로도 “내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죠.

▽곽=부모가 교사를 비난하거나 가해학생의 부모에게 직접 사과하도록 종용하는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기 때문이죠. 결국 교실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폭력을 당했는지, 아이가 어떤 점이 힘들었고 왜 말하지 못했는지를 교사가 공감하도록 자세히 말해줘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으면 됩니다.

▽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대개 피해자 측이 전학을 고려합니다.

▽김
=그건 일시적으로 덮어진 상태지,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학생 전체가 보는 앞에서 가해자가 공개적인 사과를 하도록 해야 됩니다. 모든 학급 구성원에게 학교폭력이 잘못됐음을 깨닫도록 하는 기회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요. 학교에선 이런 일을 담임교사가 하도록 힘을 보태야 됩니다. 그만큼 담임교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
=학교폭력에 대한 조례나 법령을 보면 기본적으로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담임이 갖는 권한은 신고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보고하는 정도입니다. 교사가 책임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은 별로 없습니다.

▽김=당국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모두 일진회와 같은 조직폭력배인 양 규정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쪽으로 대책을 찾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학교폭력은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신체적인 폭력 외에도 은근한 따돌림, 강요, 언어폭력으로 모욕감을 주는 행동…. 다양한 형태의 학교폭력이 존재하고, 가해학생도 다양합니다. 또 가해자의 50%가 피해자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고 학교폭력의 희생자라는 용어를 써야 합니다.

▽곽
=맞습니다. 결국 교사만이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의 다양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담임이 해결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경찰력 같은 공권력을 동원해도 학교폭력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아이들을 도와주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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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부분의 가해자도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가해자로 낙인찍고 공권력을 동원하면 위험하죠. 학교폭력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곽=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을 미리 파악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정서 행동 선별검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심각하지 않지만 불안 우울 공격성 가족관계 등 다양한 형태의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학교폭력 희생자의 고위험군이죠. 항상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중요합니다. 고위험군 아이를 관리하는 주체는 담임이어야 합니다. 학교 안에 책임자가 있어야 예방이 가능합니다.

김붕년 교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붕년 교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많은 교사들이 학생의 인성교육에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돌아가면 성적 중심의 경쟁적 분위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합니다. 공부 못하고 힘든 아이들은 대충 빼고 지나가자는 식이지요. 쓸데없는 정신건강 문제에 에너지 쏟지 말고 학교 밖에 있는 병원과 상담소로 보내서 해결하는 방안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 아이들을 붙잡고 내가 고생을 하느냐는 거죠.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가 생겼을 때 정작 아무런 개입을 못합니다. 착하고 성적 좋은 아이들만 데리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일이 학교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끝까지 끌어안고 가느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때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곽=기본적으로 교사의 업무가 너무 많으니 새로운 부담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위험군 아이를 학급 안에서 적절히 도와주고 나머지는 방과후 프로그램, 보건교사 상담교사의 상담 프로그램, 그룹 프로그램으로 해결하는 식이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해 줘야 합니다. 학교 안에서 이렇게 조기에 개입하면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교사도 다양한 형태의 학교폭력에 대처할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학교 정신건강 시스템을 운영하니 참고해야 됩니다.

곽영숙 교수 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곽영숙 교수 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호주는 인성교육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마음이 중요하다(Mind matters)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지요. 교장들의 협의회를 통해 실행 방향을 결정합니다. 또 담임교사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교장은 행정적인 지원을 합니다. 교사는 잡무에서 해방되지요. 학교 내에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편견도 매우 적습니다. 호주에서는 학생이 “선생님, 아무래도 내가 우울한 것 같아요,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수학 문제가 어려우니 도와주세요” 하는 것처럼요.

▽곽=요즘은 교사가 죄인 취급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정부 학부모 학생 교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다 같이 반성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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