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슈퍼박테리아, 아시아로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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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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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병원 중환자실에서 만성 신부전증 치료를 받던 환자 이모 씨(67)가 최근 갑자기 체온이 섭씨 41도로 올라갔다. 의료진은 이 씨가 병원 내 세균 감염으로 폐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의심했지만 항생제 투여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 씨에게 5개 이상의 항생제를 투입하면 세균 증식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꺼번에 항생제를 투입하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신장이 망가질 수 있다. 세균을 배양하기 전에는 세균이 어떤 종류인지, 어떤 항생제에 내성을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 같은 문제는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48차 미국 감염학회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회의에서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와 이의 치료 방식에 대한 최신 정보를 교환했다.》


■ 올해 美감염학회의서 중점적으로 논의한 내용은

○ 내성(耐性)을 키운 박테리아

화이자 연구원이 캐나다 밴쿠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8회 미국 감염학회에서 황색포도상구균 치료제인 자이복스의 임상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밴쿠버=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화이자 연구원이 캐나다 밴쿠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8회 미국 감염학회에서 황색포도상구균 치료제인 자이복스의 임상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밴쿠버=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회의 참가자들은 “항생제에 듣지 않는 세균이 워낙 많이 출현하고 있어 세균이 우리보다 똑똑한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에서 검출된 박테리아 중 일부는 항생제 내성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특히 베타락탐 항생제에 대한 박테리아 내성률은 지난해 아시아가 36.6%로, 대륙별 비교에서 최고였다. 항생제를 이긴 균은 돌연변이로 쉽게 바뀐다. 이럴 경우 박테리아를 하나의 항생제로 치료하기 어렵다.

최근 중국 남부지방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카르바페넴 내성균은 전염 능력이 뛰어나다는 발표도 나왔다. 이 균은 1996년 미국에서 폐렴구균 속에서 검출됐던 박테리아. 하지만 지금은 장내균에서도 생존할 정도로 적응을 잘하고 전염력도 강해졌다. 마리아 비예가스 콜롬비아 국제의료훈련연구센터 소장은 “카르바페넴 내성 박테리아는 스스로 복제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균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은 이 박테리아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슈퍼박테리아가 병원 안뿐만 아니라 병원 밖에서도 퍼지고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병원 내 감염균으로 알려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최근 교도소나 미식축구 같은 신체 접촉이 많은 운동을 하는 선수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 새로운 치료제의 등장

의학계는 최근 슈퍼박테리아를 무력화할 항생제를 속속 개발하고 있다.

이번 학회에선 화이자가 개발한 자이복스(성분명 리네졸리드)가 MRSA 치료에서 반코마이신보다 더 우월한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자이복스 임상시험에 참여한 대니얼 케트 마이애미 밀러의대 교수는 “자이복스를 7∼14일 동안 환자 정맥에 주사했을 때 환자 57.6%에서 효과가 나타나 반코마이신의 46.6%보다 더 크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 약은 MRSA의 단백질 합성을 원천 차단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폐렴, 당뇨병성 족부 감염, 피부 감염에 사용된다. 자이복스로 치료받은 환자 가운데 이상 반응은 헛구역질(1.9%) 발진(1.7%) 빈혈 및 급성 신부전(1.4%) 등이었다.

바이엘과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다른 글로벌 제약사도 아벨룩스 오구멘틴 등 슈퍼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GSK는 “앞으로 10년간 다제내성균 등 제거하기 어려운 박테리아 치료제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 병원과 의료계에도 주의보


슈퍼박테리아의 진화 속도에 비해 의약품 개발이 늦기 때문에 병원 내 감염이나 원외 감염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케트 교수는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 다제내성 녹농균,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 카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에 대해서는 의료진이 항생제 노출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내 위생도 강조됐다. 리자 마라가키스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병원 내 감염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환자의 병원 체류 및 수술 기간, 병의 중증도, 환기와 청결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 1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사의 가운과 장갑을 소독하면 병원 내 감염을 20% 이상 줄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최근 일본에서 검출되고 있는 슈퍼박테리아 NDM-1 등도 의료진이 조금만 더 주의하고 대비했으면 사망자 속출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밴쿠버=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슈퍼박테리아 종류와 감염 질환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슈퍼박테리아 종류와 감염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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