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회격묘 내부 완전 밀봉 미라 몸속엔 세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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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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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관 통째 병원에 옮겨와
수의-몸-부장품 등 모두 분석
시신 염기성 상태 보관 추정
기 존 ‘산성’ 학설 뒤집을수도

《1922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투탕카멘’ 왕은 ‘저주’로 유명하다. 미라와 피라미드를 발굴했던 고고학자 대부분이 사망한 이 사건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라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시키고 있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은 2006년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미생물 감염이 저주의 원인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미라는 어떨까. 일단 아직까지 저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 발굴된 수백 년 전 미라를 조사한 결과 한국 미라는 거의 무균 상태에서 보관되며 해로운 세균도 없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김한겸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과 교수는 경기 오산시 가장2일반산업단지에서 5월 발굴한 미라 두 구의 세균 상태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고 24일 밝혔다.》

■ 5월 발굴 여성미라, 사상 처음 세균실험해보니…

○ 미라 발굴 어떻게 진행했나


미라 발굴단이 미라의 수의를 벗겨내며 세균을 채취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과 김한겸 교수팀은 같은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와 공동으로 경기 오산시에서 발견된 미라 두 구에 대한 생물학 조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한국 미라에는 인체에 해로운 병원성 세균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미라 발굴단이 미라의 수의를 벗겨내며 세균을 채취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과 김한겸 교수팀은 같은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와 공동으로 경기 오산시에서 발견된 미라 두 구에 대한 생물학 조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한국 미라에는 인체에 해로운 병원성 세균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두 구의 미라는 조선시대 한 사대부 남성의 전처와 후처로 생각된다. 5월 9일 관에서 꺼낸 미라가 후처, 30일 꺼낸 미라가 전처다. 두 번째 미라는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9품 품계를 받았으며 첫 번째 미라는 6품 품계를 받았다. 당시 정9품부터 한 단계씩 오르는 데 평균 450일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7년여 만에 두 아내를 모두 잃은 셈이다.

미라는 모두 석관인 회격묘(灰隔墓) 안에서 발견됐다. 회격은 석회와 황토, 고운 모래를 섞어 만든 것이다. 조선 전기의 묘 방식으로 후기의 회곽묘보다 밀봉이 잘돼 미라가 더 잘 만들어진다. 발굴단은 오산 현지에서 회격을 부수고 안에 들어 있는 소나무관을 꺼내 병원으로 옮겨왔다. 미라를 최대한 원상태로 조사하기 위해 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에서 미라를 꺼냈다. 지금까지는 야외현장에서 관 뚜껑을 열고 그대로 미라를 꺼냈기 때문에 미라가 적잖이 손상됐다.

발굴작업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김 교수팀이 미라의 과학적 의미를,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과 부산서경문화재연구원 관계자들이 부장품의 역사적 가치를, 권영숙 부산대 교수팀이 복식 연구를 담당했다. 기자는 연구팀의 허락을 얻어 첫 번째 미라의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발굴작업은 시신(미라)을 염한 수의 등 부장품을 손으로 모두 한 꺼풀씩 벗겨내는 일이었다. 옷가지 하나도 수백 년 전 유산이라 연구원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떨어진 것이 있으면 현장에서 일일이 실로 기웠다.

한 꺼풀씩 옷과 부장품을 벗겨낼 때마다 측정지를 이용해 산성도와 단백질 함량 등을 측정했다. 관 속에서 머리카락, 손톱, 나뭇조각 등이 나오면 즉시 바이알(연구용 유리병)에 담았다. 곰팡이 등 세균 흔적이 보이면 면봉으로 닦아 시험관에 넣었다. 이렇게 얻은 자료들은 모두 고려대 진단검사의학과로 옮겼다.

○ “미라 보존 환경, 기존 상식과 달라”

연구팀은 이 자료를 한 달간 조사한 결과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처음 관을 열었을 때 측정한 산성도(pH)는 중성인 7로 나왔다. 이 수치가 미라의 옷을 벗겨낼수록 8, 9로 증가했다. 염기성 상태로 미라가 보관돼 있었다는 의미다. 미라는 미생물의 활동이 둔해지는 산성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결과는 기존 학설을 부정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어 연구진의 관심을 얻고 있다.

세균 조사 결과 역시 의미가 크다. 국내에서 발굴된 미라에서 세균을 채취하고 배양까지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균 배양작업을 맡은 이갑노 고려대 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미라를 감싼 부장품과 수의, 미라의 몸을 일일이 조사했다”며 “일부 세균이 발견됐지만 발굴 과정에서 유입됐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첫 번째 미라에선 관 속의 물방울, 대렴(수의의 한 종류) 등에서 총 네 종류의 세균을 발견했으며 두 번째 미라에서는 직장(항문)과 천금위(시신을 마지막으로 덮는 천) 등에서 두 종류의 세균을 발견했다. 여섯 종류의 세균은 모두 흙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잡균으로 병원성 세균은 없었다. 미라 전문가인 김한겸 교수는 “이번 결과는 한국 미라가 무균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유력한 증거로 보인다”고 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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