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약국 ‘가짜환자’ 뿌리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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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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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12월부터 ‘데이터마이닝 기법’ 본격 도입
8만곳 ‘연결고리’ 분석… 진료비-약값 부당청구 적발

# A약국에는 무좀약을 타가는 환자들이 많다. 한 달에 100명이 넘는다. 그것도 자주, 장기간 타간다. 이 무좀약은 B제약사가 만든 상품. 이 환자들은 거주지 주변 병의원을 찾지 않고 유독 C의원에서만 처방을 받는다.

이 100명이 넘는 환자들은 한 번도 C의원을 찾은 적이 없었다. 이 환자들의 명단은 B제약사에 다니는 영업사원이 친인척과 지인들을 모두 동원해 작성한 것. 이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로 A약국, B제약사, C의원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C의원은 처방비를, A약국은 조제비를 받았다. 건강보험에서 처방비와 조제비가 새어 나갔다.

B제약사 영업사원은 판매실적을 높인 공로로 회사의 신임을 얻었다. 승진도 코앞이었다. 약국에서 받은 약들은 저가로 일반인에게 팔거나, 판촉용으로 나눠줬다. B제약사 영업사원은 A약국과 C의원에만 명단을 나눠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약국 4곳과 의원 4곳도 명단을 받았다. 총 390명의 ‘유령환자’를 이용해 1억7000만 원을 번 뒤에야 꼬리가 잡혔다.

○‘데이터마이닝’으로 곳간 지킨다

앞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을 야금야금 파먹는 일부 병의원 및 약국의 ‘가짜 환자 만들기’ 행태를 뿌리 뽑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2월 1일부터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이용한 ‘부당청구 관리시스템(FDS)’을 도입한다고 15일 밝혔다. ‘데이터마이닝’이란 낱알처럼 떨어져 있는 수많은 자료들 간의 연결고리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전남 해남에 사는 70대 노인이 서울 마포구의 특정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비싼 치료를 받을 경우 의심 대상에 해당한다. 자녀의 근무지나 주소지를 변수로 넣어보면 이 병원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지역의 병의원에 비해 특정 병원의 환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든가 입원일수가 유독 긴 병원도 관심 대상이다. 건보공단으로부터 입원비나 진료비를 더 타기 위해 환자가 3일 입원했는데 6일 입원했다며 병원 측이 허위로 청구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모래 속에서 ‘큰’ 바늘 찾기

그동안 허위, 부당청구를 감시하는 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매년 2000억 원을 들여 병의원과 약국에 직접 나가 실사했다. 이를 통해 환수한 허위, 부당청구액은 매년 120억∼160억 원 선이었다. 전국 병의원과 약국 8만 곳을 다 커버할 수도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매년 300만 통의 진료명세통보서를 환자들에게 발송했다.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병의원 명단을 뽑아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6개월 전 다녔던 병원에서 무슨 치료를 며칠간 받았나요?”라고 물었을 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환자들은 거의 없었다. 꼼꼼한 환자들의 제보 덕택에 확인한 것은 10만 건. 11억 원을 환수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들인 우편비와 전화비에 비해서는 미미한 회수율이었다.

차라리 서류 심사가 더 나았다. 건보공단이 서류 심사로 잡아낸 부당청구액이 지난해 총 279억9100만 원이었다. 2007년엔 137억 원, 2008년엔 177억 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의사들, “범죄자 취급 말라”

매년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환수하는 금액은 400억 원 수준이지만 FDS를 12월부터 본격 가동할 경우 환수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 측은 “과거에는 의심되는 병의원에 대해 무작위로 환자들에게 확인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여러 가지 변수들을 입력해 개연성 높은 약국과 병원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상당수 의사들은 “월권행위” “의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공단에서 FDS를 도입하는 것은 요양기관 진료비 청구심사를 심평원과 공단 두 곳이 이중 심사를 하는 것”이라며 “공단이 건강보험법에 명시된 권한을 초월하는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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