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 살리자” 복지부-의협 메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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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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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장관-의협회장 10년만에 무릎 맞대

한해 1900여곳 문닫아
“감기걸려도 대학병원으로”
3차병원 쏠림 갈수록 심각

의료체계 수술 어떻게
동네의원 수가조정 검토
노인병 관리 특화 방안도


고사 위기에 놓인 동네 병원을 살리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강력한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9일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만호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만남은 10년 만에 정부와 의료계가 무릎을 맞댄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의약분업 10년 평가, 약가 제도 개선 등 현안들이 논의됐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한 사안은 1차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을 살리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복지부는 즉시 동네 의원 지원을 위한 초안 작성에 착수했다.

현행 의료체계는 1차와 2, 3차로 분류돼 있다. 동네 의원 같은 1차 의료기관이 경증 질환을 먼저 체크한 뒤 중증 질환이 우려되면 2차와 3차 병원으로 보낸다. 동네 의원이 ‘병의게이트키퍼’ 역할을 맡아 건강보험 재정의 낭비도 줄이고 병의원 오남용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의료체계는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됐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동네 의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내놓은 ‘2009년 상반기 요양기관별 진료심사실적’에 따르면 대형 대학병원(종합전문병원)은 2008년 상반기보다 내원일수는 17.8%, 건강보험 진료비는 20.7% 늘었다. 중급 병원은 같은 기간 내원일수는 15.2%,진료비는 22.1% 증가했다. 전체 의료기관의 평균치는 각각 3.7%와 11.5%였다. 반면 동네 의원은 이 기간 각각 1.5%와 6.3%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처럼 동네 의원 대신 큰 병원으로만 몰리는 의료소비 패턴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도 많다. 대학병원이 모든 질병 치료를 독점하고, 중급 병원들은 척추와 관절 등 돈이 되는 분야에만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부자 동네라는 강남구에서 일반외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동네 의원의 경영난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심평원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1900여 개의 동네의원이 문을 닫고 있다. 동네 의원이 문을 닫으면 ‘단골 의원’이 사라진다. 환자들은 또 다른 의원이나 병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진료비 부담이 늘어난다. 의료서비스 이용량이 늘어나면 건강보험 재정도 압박을 받는다.

● 어떻게 개혁할까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는 12일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방안 토론회를 가졌다. 동네 의원을 살리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가령 동네 의원이 큰 병원에 환자를 넘길 때 발급받는 진료의뢰서의 유효기한을 2주일과 1회로 정해 큰 병원 이용을 줄이자는 제안이 있었다. 또 큰 병원이외래 진료를 끝내면 동네 의원으로 환자를 돌려보내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도 나왔다.

복지부는 이 방안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노인 질병을 예방하고 만성질환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동네 의원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노인 환자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진료비가 2,3배 비싼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를 위해 동네 의원의 진료 수가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진료수가는 대학 병원이 1만6450원, 동네 의원이 1만 2280원이다. 동네 의원의 역할을 늘리는 대신 진료 수가를 올릴 확률이 크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개혁은 일단 동네 의원을 지원하는 쪽으로 진행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의료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 2, 3차 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역할이 축소되는 대학병원의 반발도 예상된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주치의 제도를 통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립했다.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동네 의원이 주치의 역할을 하면서 질환의 예방과 1차 치료를 담당해야 한다”며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치의가 환자에게 맞춤형 질병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건보 재정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그러나 주치의 제도는 의사 내부에서도 이견이 적지 않다. 최종현 의협사무총장은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의사의 60%가 전문의인데, 그들을 주치의로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노홍인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도 “논의는 해봐야겠지만 현재 주치의 제도를 당장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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