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본 조선왕조실록]<1>태종, 함경도에 신도시 개발하고 강화에 둘레 20km 목장도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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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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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과학의 눈으로 보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조선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과학자가 본 조선왕조실록’을 이번 주부터 5회 연재한다. 시리즈 연재는 이태식 한양대 교수가 맡는다.》
역사는 돌고 돈다. 600년 전 조선시대 초기에 벌어진 일들 중에는 요즘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실록을 보면 오히려 조선시대가 더 민주적이며 경제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조선의 세 번째 왕 태종 시대에도 요즘과 같은 신도시 개발이 있었다. 1417년 태종이 함길도(함경도)에 고을을 만들면서 각종 혜택과 세금 감면을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도 1438년 ‘신도시 개발’ 회의를 주재했다. 결론은 ‘함길도 부거(富居) 네 고을이 요지이므로 돌성을 새로 쌓아 군읍을 설치하고, 다른 고을 백성을 적당하게 옮기게 하며, 수령을 새로 골라 보내라’는 것이다.

세종 시대에는 토목과 도로 건설도 매우 과학적이고 인간적이었다. 1439년 세종 시절 “성을 둘러 길을 내는 것은 오래된 일인데 도성 옆에 사는 자들이 길을 막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초목이 무성하고 우로(雨露)에 젖어서 성곽이 무너지게 됐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한성부는 바로 성 안팎에 길을 내고 관리들이 날마다 순찰하게 해 문제가 있으면 봄가을마다 수리하게 했다. 예나 이제나 도로는 건설만큼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시내 도로와 시외 도로의 폭을 달리해 교통의 효율성을 높였다. 도성 안에는 마차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에 두 자(약 60cm)를 더하고, 성 밖에는 마차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에 넉 자(약 120cm)를 더하게 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산업도시, 또는 혁신도시도 조선시대 초기에 등장했다. 1415년 태종이 강화에 새 목장을 건설하려 했다. 둘레가 6만7148척(약 20km)에 달했다. 신하들이 반대하자 태종은 “강화의 백성들이 그곳으로 이사 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태종은 “제주는 해로가 험해 갑자기 급한 일이 있더라도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강화에 목장을 만들면 나라 말을 사용하는 데 여유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요즘 특정 지역에 새로운 산업 벨트를 육성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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