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조상은 1만5000년 전 중동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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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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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포함 美연구팀 ‘네이처’誌에 발표

《1만5000년 전 사냥이나 채집 생활을 하며 떠돌던 사람들 주위에 먹이를 찾던 늑대 몇 마리가 다가왔다. 비교적 순한 성격이었던 늑대들은 인간에게 붙잡혔고, 인간은 그들을 길들여 함께 살았다. 밤에 몰래 무리를 공격하는 침입자들을 향해 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영원한 친구’ 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늑대가 인류와 처음 만나 개로 진화를 시작한 곳은 어디였을까. 지금까지는 동아시아였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했다. 동아시아의 회색늑대가 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유전자 연구로 이를 뒤집은 새로운 주장이 과학학술지 ‘네이처’ 18일자에 발표됐다. 이 논문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생물통계학과 박사과정의 한은정 씨(30)가 제4저자로 참여했다.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한 한 씨는 개와 늑대의 게놈 연구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개-늑대 게놈 비교… 개-중동늑대,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
“기억-사회성 유전자, 늑대를 개로 진화시킨 결정적 요인”

○ 개-늑대 게놈서 4만8000개 유전자 조사


한 씨는 “개와 늑대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중동 지역에 사는 늑대가 처음으로 개로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유럽, 아메리카, 중동, 중국 등에 사는 늑대 225마리와 개 912마리의 게놈을 조사했다. 게놈은 한 개체가 가진 전체 유전자를 말한다. 한 씨는 “기존 연구는 세포 안에 있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를 비교했지만 이번에는 개와 늑대의 게놈을 전체적으로 연구해 규모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늑대와 개의 게놈 안에 있는 4만8000개의 유전자 표지(마커)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개는 중동에 사는 늑대와 유전자를 가장 많이 공유했다. 중동에 사는 개가 유전적인 다양성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유전적인 다양성이 높을수록 진화가 먼저 일어난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연구 책임자인 로버트 웨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과 교수는 “개의 진화가 일어난 정확한 시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늑대가 개의 선조로 진화하는 데에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다양한 중동 지역에 사는 개를 조사했지만 진화가 시작된 정확한 지역을 찾지는 못했다. 베스 섀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개의 선조들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그곳에 사는 늑대와 교배해 유럽이나 중동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했다.

○ 개 유전자 하나만 달라도 19종으로 갈려

지구에 사는 개 품종의 80%는 최근 수백 년 동안에 탄생했다. 종류도 다른 가축보다 훨씬 다양하다. 비결은 뭘까. 웨인 교수는 “개는 소수의 유전자만으로도 겉모습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의 경우 많은 유전자가 작용해 키나 몸무게를 결정한다. 가축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품종을 만들려면 많은 유전자를 섞거나 변화를 주어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도 어렵다. 그러나 개는 유전자 하나만 조금 달라져도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거나 2배로 커진다. 웨인 교수는 “닥스훈트 같은 다리가 짧은 개는 19가지 품종이 있는데 모두 성장과 관련된 유전자 하나에 아주 작은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닥스훈트는 다리가 짧고 몸인 긴 독일산 개다.

소형개와 대형개도 유전자 하나로 갈린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2007년 ‘사이언스’에 23종류의 소형개(몸무게 9kg 미만)와 20종류의 대형개(몸무게 30kg 이상) 526마리를 골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인슐린 성장 인자(IGF1)’라는 유전자에서 단 하나의 염기만 달라져도 소형개와 대형개가 갈린다는 것이다. 개의 성격도 유전자와 관계가 깊다. 개의 행동적인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가축을 돌보는 행동과 사냥감을 가리키는 행동, 대담함, 훈련성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목양견인 콜리는 개 한 마리가 양 50∼100마리를 다룰 수 있다. 미국 유타대 칼 라크 교수팀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양을 지키는 책임감에 관여하는 유전자 후보는 MC2R, C18orf1 등이다. 이들 유전자가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성격의 개가 나온다.

그렇다면 어떤 유전자가 늑대를 개로 진화시킨 것일까. 한 씨는 “연구 결과 기억 유전자와 사회성 유전자가 개의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른 늑대보다 주인을 잘 기억하고 사회성이 높은 늑대가 처음에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고, 개로 진화하면서 그런 능력이 더 발달했다는 것이다. 한 씨는 “대개 진화 과정에서는 면역 반응과 관련된 유전자가 중요한데 개의 경우 뇌나 정신능력과 관련된 유전자가 진화 유전자로 나온 게 특이했다”며 “개를 개답게 만든 유전자를 더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이 다음 연구 주제”라고 밝혔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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