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괴물이 되어가는 ‘웹2.0’… 아직도 믿으시나요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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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2.0’은 종교입니다. 실체를 찾을 수 없고,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웹2.0을 통한 성공을 믿습니다. 이 새로운 트렌드가 ‘참여와 공유, 개방’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대중의 지혜를 모아 인터넷,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리라는 믿음입니다. 웹2.0이란 표현 자체는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를 위해 개발된 용어입니다. 하지만 그 뜻풀이는 철학적이고 심지어 숭고해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개방’이 보장하는 익명의 그늘 뒤에 숨은 불특정 다수는 ‘참여’를 통해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고, 인터넷의 빠른 속도가 이를 ‘공유’하자 ‘성찰의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최근 한 연예인이 몇 년 전 인터넷에 올린 짧은 글로 말미암아 연예 활동을 접는 사건이 있었죠. 누리꾼의 비난이 쏟아지고 해당 연예인이 활동 중단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일이었습니다.

웹2.0이 경제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어긋났습니다. 대표적인 웹2.0 기업들이 성장할수록 엉뚱한 피해가 생겼습니다. 미국의 ‘크레이그리스트’라는 기업은 작은 전단 광고를 모아 온라인으로 보여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성장하자 지역 전단지 업체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크레이그리스트 직원 수십 명이 수백만 달러를 버는 동안 미국 전단지 업체들의 직원 수만 명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웹2.0은 결국 ‘길목’을 장악한 소수 기업이 시대 변화에 뒤처진 노동집약적 일자리를 없애버리는 비정한 비즈니스였습니다.

‘대중의 지혜’가 결정하는 진리에 대한 믿음도 흔들립니다. 미국 대학들은 위키피디아를 베끼는 학생들에게 ‘F학점’을 주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네이버 지식인을 베껴 숙제를 제출하는 학생들을 찾아내느라 교사들이 분주합니다. 위키피디아와 지식인의 정보는 ‘맞는 정보’일지는 몰라도 ‘다른 생각’을 이끄는 지적 자극을 퇴보시킨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문화적 다양성도 퇴보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서 워크맨에서 몇 차례고 반복해 듣고, 영화 한 편을 보려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게 주인과 진지하게 대화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MP3플레이어에 수천 곡의 음악을 넣고는 1분도 듣지 않은 채 ‘다음 곡’ 버튼을 누릅니다.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영화를 볼 땐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다른 영화를 재생합니다.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우리는 이제 ‘순위 차트’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의존합니다. 순위 차트에서 빠진 작품을 점점 덜 소비하고, 음악과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유행’에 의존해 제작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제 e메일의 받은편지함에는 ‘웹2.0 방식의 새로운 서비스’를 자랑하는 기업들의 보도자료가 쌓이고, ‘웹2.0 방식으로 소통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선전물이 배달됩니다. 이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웹2.0을 믿으시나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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