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중에도… 폭발사고에도 나로호 개발 멈추지 않았다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6분


항공우주硏 250명 연구원 ‘8년의 피땀’ 결실

나로호(KSLV-I)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250명 연구원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결실이었다. 연구원들은 지난 8년 동안 휴가는 물론이고 주말까지 반납한 채 발사 성공을 위해 나로우주센터에 남아 묵묵히 연구에 열중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연구원들에게도 달콤한 신혼생활이란 ‘그림의 떡’이었다. 친지나 가족의 상(喪)을 챙기지 못하는 연구원들도 있었다. 일부 연구자는 연구 도중 비행기가 추락할 뻔한 위기 상황을 맞기도 했다.

○ 작업복 차림의 결혼식 하객들

나로호 상단부 엔진 고공환경시험설비(HATF) 구축팀 김상헌 연구원은 하마터면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치르지 못할 뻔했다. HATF 최종 검증시험이 결혼식 이틀 전에야 끝났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결혼식 하루 전날 가까스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를 ‘탈출’해 결혼식이 예정된 대구로 갈 수 있었다.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HATF팀 동료들이 검증시험에 입었던 작업복 차림 그대로 참석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김 연구원에겐 상중에도 나로호가 먼저였다. 4월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엔진만 없을 뿐 크기와 무게, 각종 전자장비가 진짜와 똑같은 발사체로 발사대 검증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나로호 1단을 개발한 러시아 흐루니체프사는 검증시험에 사용되는 자재를 공항을 통해 수시로 들여보냈다. 외조부의 비보를 듣고 빈소가 차려진 서울로 급히 올라가던 김 연구원에게 때마침 흐루니체프사에서 보낸 화물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검증시험이 이틀씩 연기될 수 있었다. 김 연구원은 빈소 대신 인천공항을 택했다. 덕분에 발사대 검증시험은 무사히 끝났지만 김 연구원에겐 지금도 외조부의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이 남아 있다.

○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발사 실패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도 발생했다. 2006년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 중이던 나로호 상단부 시험용 로켓이 시험 도중 폭발한 것. 로켓 연소 과정에서 로켓 몸체는 물론이고 시험용 시설까지 모두 타버렸다. 하마터면 개발 일정 전체가 미뤄질 수 있을 정도로 사고 규모가 컸다. 결국 연구원들은 폭발 원인을 찾아냈지만 이를 복구하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 전자 장비를 실험하던 시험용 항공기가 두 번이나 추락할 뻔한 일도 있었다. 나로호의 비행궤도를 추적하는 데 필요한 국산 장비를 시험하던 경비행기가 제주도와 여수 상공을 지나던 중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면서 인근 공항에 불시착한 것. 당시 참가한 연구원들은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다시 용기를 내 재차 비행에 나섰다.

발사를 앞두고 나로호 개발의 실무를 책임진 30, 40대 연구원들은 최근 부담감에 몸살을 겪고 있다. 만에 하나 발사에 실패했을 때 돌아올 ‘후폭풍’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주로켓을 쏘아 올린 9개국 중 최초 발사에서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와 프랑스, 이스라엘 등 3개국에 불과할 정도로 실패 확률이 적지 않은 편이다.

특히 실패를 값진 경험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 과학계의 분위기상 이번 발사에 실패할 경우 자칫 한국 액체로켓 연구가 크게 후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젊은 연구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나로호 발사가 잇따라 연기되면서 연구원들의 사기는 크게 위축된 상태다. 이주진 항우연 원장은 “우주개발 선진국 역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오늘의 우주강국이 됐다”며 “실패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력과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문화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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