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호 선원의 무덤을 찾아나서다

  • 입력 2009년 5월 14일 10시 46분


<<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윈의 항로를 따라 해양 탐사에 나선 자원탐사 전문가 권영인 박사가 오랜만에 소식을 보내왔다. 권 박사는 장거리 항해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고 탐사 대원을 구하지 못하면서 최근 탐사 방식을 육로 탐사로 변경했다고 했다. 그가 보내온 편지의 전문을 소개한다. 관련 기사는 과학동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다. >>

지난해 출항한 ‘다윈을 따라서’ 탐사팀은 미국 아나폴리스 항에서 탐사선 장보고호를 건조해 미국 동부해안을 따라서 남하한 뒤 걸프 해류를 건너 바하마 군도, 카이코스 터크스 섬,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에 이르는 항해를 수행했다. 하지만 탐사팀은 카리브해 중간 지점에 도착해 배를 교체하지 않고는 남미의 마젤란 해협과 페루 연안을 항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보고호는 바하마 군도와 미국 연안의 수로 같이 수심이 낮은 지역을 조사하기에는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하지만 식량과 연료를 충분히 실을 수 없고 파도가 높은 칠레연안과 태평양 항해에는 부적합하다. 또 파도가 높은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려면 남반구가 한여름이 되는 2월 전에 남미 남단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이미 시기적으로 늦어서 1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탐사를 도와주던 대원이 복학을 하기 위해 귀국했지만 추가 지원인원이 확보되지 않아 부득이 남미지역은 육로로 탐사하기로 했다. 다윈도 당시 5년이란 시간을 육상에서 연구하는데 사용했고 이때 비글호는 따로 해양 측량을 실시했다.

출발 159일째 3월 16일 월요일 흐림

다윈이 남미 대륙에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바이아(Bahia) 항구다. 지금은 브라질 바이아 주의 살바도르라고 불린다. ‘바이아’는 철자는 다르지만 스페인어(bahia)나 포르투갈어(baia) 모두 발음이 같으며, 바다가 육지 안으로 들어온 만(灣)을 지칭한다. 이런 지형은 대서양의 파도와 조류에서 배를 보호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예전에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교역하기 위해 건너온 상선이 머물렀던 곳이다.

난 이곳에서 탐사를 나갔다 열병으로 숨졌다는 비글호 선원 2명의 무덤을 찾기로 했다. 살바도르 관련 자료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상파울로의 피나코테카 미술 박물관에서 다윈이 살바도르를 방문할 당시의 그림들을 찾아봤다. 마침 브라질의 ‘경치 및 파노라마’ 특별전에 나온 그림이 1800년대 브라질 도시와 자연에 대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다윈 방문 당시의 살바도르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됐다.

출발 161일째 3월 18일 수요일 맑음/비

다윈의 일기에 ‘가파른 제방’으로 묘사된 실바도르 구도심 서쪽의 급경사면. 현재는 케이블카로 오르내릴 수 있다.

묵고 있던 호텔에서 나와 탑승한 버스는 4시간에 한 번씩 휴게소에서 정차했다. 휴게소는 매우 지저분했다. 화장실에는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지만 악취 때문에 샤워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상파울로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화강암 노두(露頭)들이 줄어들고 편마암이 점차 우세하게 분포한다. 지형은 대부분 완만한 둔덕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 풀이나 작은 나무가 덮여 있어서 소나 말을 방목한다. 하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땅이 건조해져 선인장과 마른 풀이 보인다. 대부분의 지역은 적색의 풍화토가 잘 발달돼 지역민들이 이런 흙을 이용한 흔적이 나타난다. 하지만 대규모 도자기 공장은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선 계룡산 주변 화강암이 풍화돼 계곡에 쌓인 퇴적물을 이용, 조선시대에 도자기가 많이 제작됐는데 이는 브라질의 토양 조건과 유사한 것이다.

출발 162일째 3월 19일 목요일

살바도르 서쪽에서부터 대형 화강암 노두들이 솟아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표층의 토양이 삭박(削剝)돼 드러난 것이다. 살바도르 터미널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와 더위로 아수라장이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구도심에 도착하니 숙소로 보이는 호텔들은 모두 작고 허름한 여인숙 수준이다. 마침 유스호스텔이 눈에 띄어 들어가니 가격도 싸고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숙박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30헤알(브라질 화폐), 한화로 약 2만 원인데 보통 이곳 호텔 가격이 200헤알 이상이니 무척 싼 편이다. 아침도 준다고 한다. 방은 덥고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선풍기가 있지만 역부족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쓰는 방은 20헤알이라고 한다. 숙박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20대 초반이다. 그래도 구도심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어서 만족이다. 구도심은 살바도르 부둣가 주변이다. 이곳에는 오래된 건물과 성당, 교회가 있어서 17~18세기의 건축물을 구경할 수 있다.

출발 163일째 3월 20일 금요일

180여 년 전 다윈이 도착했을 당시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거리. 다윈의 일기에는 ‘좁고 긴 창문을 가진 화려한 문양의 집들이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밤새 더위로 뒤척이다가 아침 일찍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 남아 있을지 모를 비글호 항해기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건축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성당 박물관 등에서 당시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많은 건물이 사라진 탓에 무덤의 위치와 같은 기록을 더듬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시내 지질 박물관을 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혹시 다윈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몰라서였다. 박물관에 가보니 살바도르 주변에서 산출되는 방사성 광물인 금홍석, 우라늄 등과 석유 탐사 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브라질 석유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전시물이 매우 잘 정리돼 있고 내용도 풍부했다. 다윈이 광택 나는 검은색 돌이라고 표현한 섬장 편마암(syenite gneiss)으로 구도심 보도 블록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이 박물관에서 알 수 있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비글호 선원이던 영국인의 무덤을 찾아보려고 관광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도심 발달로 건물이 여러 채 들어선 탓에 열대우림과 묘지 등이 있을 공간이 없었다.

출발 164일째 3월 21일 토요일 맑음

모기에 많이 물려서인지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열이 많이 나면서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영국인 묘지를 찾아보았다. 예전에 항구의 일부였던 작은 건물과 해안에서 편마암 노두 등을 볼 수 있었지만 비글호에서 탐사 중 사망한 2명의 영국인 묘지는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권영인 자원탐사전문가 kwon4966@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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