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기술개발은 光速… 법-제도는 아날로그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국제의료기기 전시회 신제품 시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5회 국제의료기기 병원설비 전시회에서 13일 한 업체가 원격진료 솔루션을 이용한 진료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국내외 의료기기 업체들이 참가한 이번 전시회는 15일까지 열린다. 김재명 기자
국제의료기기 전시회 신제품 시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5회 국제의료기기 병원설비 전시회에서 13일 한 업체가 원격진료 솔루션을 이용한 진료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국내외 의료기기 업체들이 참가한 이번 전시회는 15일까지 열린다. 김재명 기자
헬스케어산업 ‘신성장 동력’ 선정됐지만… 곳곳에 ‘전봇대’

제품성능 개선해도 정부 보험가는 그대로

신제품 개발해도 허가 받는데 길게는 2년

애매한 규정에 묶여 원격진료 ‘반쪽’ 전락

중증 수면무호흡을 앓고 있는 김봉겸 씨(48·전문직)는 몇 년 전 300만 원짜리 가정용 인공호흡기(CPAP)를 구입해 사용하다 얼마 전부터 옷장 속에 방치해 두고 있다. 마스크, 필터 같은 소모품 값이 만만찮기 때문. 마스크만 해도 한 개에 20만 원이 넘는다.

갑상샘에서 종양이 발견된 최은희 씨(24)는 피부 절개를 최소화한다는 로봇수술을 권유받았으나 수술비용이 1000만 원이라는 말에 기가 질렸다.

CPAP, 수술로봇의 공통점은 국내 생산이 안 돼 전량 수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수술로봇은 미국 ‘인튜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 제품으로 한 대에 25억 원에 육박하는 고가장비다.

수입의존도가 높으면 장비 가격뿐 아니라 시술가격도 비싸져 결국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무엇보다 의료기기산업은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007년 기준 220조 원. 한국은 그중 1%(2조2000억 원)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고부가가치 헬스케어 산업 육성 천명=정부는 올 초 헬스케어 산업을 고부가가치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의료서비스, 바이오제약·의료기기산업 활성화를 공언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정보기술(IT)을 생명공학기술(BT)에 접목하면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도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복지부가 계산해 보니 외국산 치료재료와 의료기기를 대체하는 국산 제품이 나왔을 때 외산 제품의 소비자 가격은 평균 46% 떨어졌다. 150만 원 하던 의료용 레이저 수술기의 경우 6만 원짜리 국산제품이 등장하자 다국적 업체들은 자사 제품 가격을 93%나 낮춰 10만 원에 팔았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국제적으로 중하위권이지만 국내 여타 산업에 비해 성장세가 빠른 편이다. 생산실적은 2000년 8724억 원에서 2007년 2조2169억 원으로 늘었다. 수출은 4700억원에서 9590억 원으로, 수입은 8257억 원에서 2조14억 원 규모로 대폭 늘었다.

초음파 영상기기, 디지털 X선 촬영장치 등 고급 기술이 필요한 품목의 수출이 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12∼15일)는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전 세계 34개국에서 1023개의 의료기기 제조사가 참가한 이 행사에 국내 업체도 563곳 참여했다. 첫 전시가 열린 1980년에 국내 업체는 두 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급 기기를 만드는 역량은 미국, 유럽, 일본의 회사에 비해 매우 낮은 편. 강태건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팀장은 “국내 기술력은 선진국 수준의 60∼70% 정도”라고 말했다.

자기공명영상(MRI)촬영장치, 컴퓨터단층촬영(CT)장치는 국내 수요가 많지만 해외 제품 의존도가 높아 1억4000만 달러어치(2007년 기준)를 수입했다. 혈관 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스텐트 역시 1억885만 달러어치를 수입해 쓰고 있다.

▽법 따로 산업 따로=그러나 걸림돌도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정부 규제다. 연구개발(R&D) 의욕을 꺾는 제도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능을 개선해도 가격으로 보상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의료기기의 보험가는 정부가 정하는데, A제품을 만들어 팔다 ‘A′ 제품’을 만들었을 때 성능이 개선됐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지만, 이 절차가 까다로워 종전 제품과 같은 가격이 매겨지기 일쑤다.

또 제품 개발 후 출시로 이어지는 시간이 길다는 점도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제조사가 제품을 만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품목허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보험수가를 받아야 한다. 각 과정이 6개월∼1년 걸린다.

나흥복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사업부장은 “제품 만들고 2년 동안 팔지 못하는 일도 있다”며 “이를 두고 업계에선 ‘두 번의 고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U헬스케어분야도 기대보다 성장속도가 더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

현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 규정이 애매하게 돼 있다. 책임소재도 불명확하다. 보험급여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원격진료를 하더라도 환자 옆에 또 다른 의사 혹은 간호사가 꼭 있어야 하는 반쪽짜리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복지부와 식약청은 11일 ‘의료기기산업 종합 지원대책’을 마련해 올해 5월 중 가격 변동 요인을 반영하도록 하고 품목허가, 보험수가 결정 절차를 원스톱으로 지원해 제품이 빠르게 출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원격진료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원격진료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