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로 시작… 사이트 옮겨가며 30배 ‘악성 전이’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4분


악플 어떻게 증폭되나

‘남몰래 기부’ 놓고 이념공세… 악플도 평균의 2배

야구 기사 댓글엔 특정팀 비난이 13% 차지하기도

부정적 글에 누리꾼 더 몰려… 일부선 “영향력 과대평가”



지난해 11월 인터넷에선 영화배우 문근영(22) 씨가 남몰래 기부를 해왔다는 뉴스를 놓고 엉뚱하게도 뜨거운 이념 논쟁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달 13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문 씨의 기부 사실을 발표하자 14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배우 문근영은 빨치산 슬하에서 자랐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논쟁이 촉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념 논쟁이 처음 발화된 것은 이보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공식 발표 하루 전인 12일부터 일부 포털에서 ‘(경)상도 애들은 문근영 고향이 (전)라도라서 빨갱이라 하던데…’ 등 이념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 것.

○ 댓글은 루머의 발화점이자 확산의 결정적 경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남몰래 기부를 해온 주인공이 ‘20대 여성 연예인’이라고만 밝히자 누리꾼들은 이를 문 씨라고 추측한 뒤 이념과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문 씨에 대한 댓글 수는 17일 ‘문근영 악플, 기부천사에 제 정신인가’라는 내용의 이념 논란 관련 기사가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기사의 댓글 가운데 악플은 27.8%로 이번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평균 악플 비중의 약 2배에 이르렀다.

‘문근영 이슈’는 17일 이후 게시판과 전문 사이트, 카페, 블로그 등으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게시판의 경우 관련 글이 이전보다 3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댓글이 루머를 발화해 확산시키고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난해 9월 불거진 ‘최진실 사채설’에선 일부 누리꾼이 댓글에서 최진실 씨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루머를 기정사실화하는 역할을 했다.

최 씨 사채설이 처음 제기된 곳은 9월 초 일부 증권 전문 사이트 커뮤니티였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 두 가지’ 등의 제목이 붙어 단순한 루머 수준으로 그달 20일경 민간단체의 웹사이트 등으로 옮겨졌다. 이후 22일경 언론에 관련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블로그와 게시판, 카페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누리꾼들은 최 씨를 익명으로 처리한 기사에 ‘최진실과 엮이면 다 결딴나는 이유’ ‘안 되는 게 없는 진실, 역시 무슨 일 있을 때마다 해결을 잘해요’ 등 최 씨를 실명으로 비난하는 댓글을 올렸다.

이 댓글들은 최 씨를 둘러싼 루머가 사실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표현해 최 씨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주요 이슈마다 댓글이 여론 몰이

두 사례뿐만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댓글이 많이 달렸던 ‘제2의 금 모으기’ ‘삼성 라이온즈의 3연승 플레이오프 진출’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의 촛불시위 발언’ ‘조성민 친권 회복 시도’ ‘악플러 구속 수사’ 등 대부분의 기사에서 댓글이 해당 사안에 대한 여론을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10월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 등이 ‘외화 통장 만들기’ 운동을 제안한 것을 ‘제2의 금 모으기’로 보도한 기사의 댓글은 97.2%가 이를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댓글 가운데 악플이 전체의 19.2%로 평균보다 훨씬 많았다.

“달러 모으기? △△는 소리 하지 마라. △△△들, 있어도 못줘” “자빠졌네. △△가 다 말아먹고…” 하는 식으로 달러 모으기를 제안한 의원들을 포함해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대부분이었다.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이 “촛불시위대가 왜 멜라민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하느냐”고 지적했다는 기사는 다른 기사에 비해 찬성(29.7%)과 반대(44.6%)가 비교적 팽팽히 맞선 사례.

그러나 이 기사의 댓글 역시 논리적인 비판과는 거리가 멀었다. 악플의 비중이 47.3%에 달했고 이념과 지역 갈등을 언급하며 상대편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 진출 관련 기사는 스포츠 기사로는 이례적으로 온라인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다. 기사 내용은 삼성이 조동찬의 8회 결승타로 롯데 자이언츠를 3연승으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는 것.

그러나 기사에 달린 댓글은 경기 결과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엉뚱하게 롯데 응원단을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체 댓글의 14.4%가 악플로 분류됐다.

악플 가운데 90.9%는 “오늘부터 롯데가 아니라 너그들은 △데야 알았냐?” “△데가 어느 도시 팀입니까? 그 도시 사람들 근성이…” 하는 식으로 아무 근거 없는 비하와 욕설로 일관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사에 달린 댓글이 특정한 이슈에서 온라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격한 감정을 분출하는 댓글이 여론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 부정적 견해가 더 많아

댓글은 대부분 주어진 주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컸다.

조사를 맡은 코리안클릭의 강승지 연구원은 “댓글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32만여 개의 댓글이 주제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분석한 결과 부정적인 견해가 긍정적인 것에 비해 1.4배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와 사회 분야는 부정적인 댓글이 긍정적인 댓글의 1.7배로 평균보다 높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찬성의 목소리보다 반대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데 더 적극적인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양혜승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다룬 논문에서 “긍정적 댓글은 독자의 태도를 호의적인 방향으로 유인하지 못하지만 부정적 댓글은 부정적으로 유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댓글을 통해 토론하는 과정이 비판을 위한 비판, 부정을 위한 부정, 혹은 허무주의적 부정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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