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 안하고 원하는 작물 만든다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동종교배로 원하는 유전자 얻어

홍수-병충해에 강한 벼-콩 개발

환경 논란 GMO 대안으로 주목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고도 원하는 식물을 만드는 기술이 등장했다. 미국 농무부는 최근 ‘2008 최고의 연구상(Discovery Award)’에 필리핀과 미국 공동 연구팀이 개발한 ‘홍수에 강한 벼’를 선정했다. 유전공학과 전통 육종법을 접목해 빠르고 안전하게 새 품종을 개발한 연구성과다. 기존 유전자변형생물체(GMO) 농산물이 사회, 환경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반면 이 기술로 만든 작물은 비교적 안전해 GMO 작물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초 방글라데시의 한 농촌에 세계 각국의 눈이 집중됐다. 2주 동안 물속에 잠겨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게 개발된 벼가 현장 재배에서도 성공한 것. 해마다 홍수로 3000만 명분의 식량을 잃어 온 방글라데시와 인도에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지금까지 유전자변형 기술로 병충해나 가뭄에 강한 벼 등이 개발됐지만 안전성과 환경위해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벼는 2년 안에 아시아 각국에 심을 예정이다. 유전자변형 기술 대신 전통 육종법과 비슷한 ‘DNA 표지를 이용한 육종(MAS)’ 기술을 써 안전성 테스트 등 별다른 규제 없이 바로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종의 식물 중 원하는 유전자를 가진 품종끼리 교배하는 것이 기본원리다. 유전자변형 기술처럼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교배를 거치면서 원하는 유전자가 자연스럽게 한 식물에 옮겨오도록 하는 것이다.

유전자 이전 여부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것이 ‘DNA 표지’이다. 유전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주소 역할을 한다. 교배를 마친 뒤 DNA 표지만 확인하면 후손의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매번 직접 키워 확인해야 하는 전통적인 육종 방식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필리핀 국제쌀연구소 데이비드 매킬 박사는 13년 전 인도의 전통 벼 품종에서 홍수를 이기는 유전자 ‘Sub1A’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품종을 생산력이 뛰어난 벼 품종과 교배하면서 유전자 이전 여부를 계속 확인했다. 그 결과 새로운 벼 품종은 물에 잠겼을 때 생장을 멈춘 채 물이 빠질 때까지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살아남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패멀라 로널드 교수는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아 별다른 규제 없이 곧바로 현장에서 재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과 일본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 홍수 지역의 농민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농촌진흥청 문중경 박사팀이 같은 방법으로 콩모자이크바이러스(SMV)에 강하면서도 성장이 빠른 콩을 올해 3월 개발했다. 재래종 콩에서 바이러스에 강한 유전자(Rsv1)를 발견해 생산력이 뛰어난 콩나물용 콩과 교배시킨 것.

연구팀은 이 유전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DNA 표지를 개발해 한 세대씩 교배를 거칠 때마다 유전자 이전을 확인했다. 전통적인 육종 방식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려면 12∼18년이 걸리는데 연구팀은 MAS 기술로 6년 만에 성공했다.

문 박사는 “같은 종 안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찾고 DNA 표지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활용의 폭이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건강과 생태계에 유해 논란이 있는 유전자변형 기술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트로피’ ‘육식의 종말’ 등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 석학인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FOET) 이사장은 올해 초 언론을 통해 “MAS가 유전자변형 기술의 대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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