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만 잘 가꿔도 화마 막을 수 있다

  • 입력 2008년 11월 28일 02시 59분


산불은 인간의 힘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재난이다. 이달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휩쓸다 23일경에야 진화된 산불은 이 같은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외신에 따르면 가옥 800채와 산림 1억7000만 m²가 잿더미가 됐다.

그런데 화마에 던져진 집 두 채에 피해가 전혀 없었던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두 집은 공통적으로 독특한 정원을 가꿨다. 정원에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조경용 연못과 도랑을 만들었다. 정원 바깥쪽에는 선인장을 심었다. 수분을 많이 함유한 선인장이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아줬다.

선인장처럼 불길을 막아주는 나무를 내화수종이라고 한다. 보리수나 동백나무도 잎에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 불에 잘 타지 않는다.

불이 잘 붙지 않는 나무만 내화수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쉽게 불이 붙고 짧은 순간 전부 재가 되는 참나무, 밤나무, 가시나무도 내화수종이다. 이런 나무에 붙은 불은 힘이 약하고 오래 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나무에 불이 옮겨 붙기 전에 저절로 사그라진다.

구교상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박사는 “참나무 같은 내화수종을 정원 가장 밖에 심고 그 바로 안쪽에 보리수나 동백나무를 심으면 불을 막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산불이 참나무에 옮겨 붙더라도 보리수나 동백나무에 옮겨 붙기 전에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 속에 있는 국내의 많은 사찰이나 문화재 주변에는 내화수종이 심어져 있다. 산불을 막는 정원인 셈이다.

이 정원을 공중에서 보면 문화재를 중심으로 종류가 다른 나무가 동심원(同心圓)을 이루고 있다.

먼저 문화재를 중심으로 반경 15m 안에는 아무것도 심지 않는다. 공터를 만들어 불에 탈 재료를 아예 없애는 것이다.

공터 둘레에는 5∼10m 정도 잔디를 깔고 그 바깥쪽에는 키가 작은 관목식물인 산수유나 사철나무를 10m가량 심는다. 산수유와 사철나무도 내화수종이다.

관목식물 밖은 내화수종이면서 키가 큰 동백나무나 보리수로 에워싼다. 불은 위쪽으로 번지기 때문에 동백나무에서 산수유로 불이 옮겨 붙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장 바깥쪽에는 다른 나무에 불을 잘 옮기지 않는 참나무나 밤나무를 듬성듬성 심는다. 불에 탈 나무가 적을수록 산불의 화력은 약해진다.

하지만 이런 정원도 산불로부터 문화재를 완벽히 보호하지는 못한다. 산불은 섭씨 1600∼1800도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내화수종은 물론이고 축축하게 젖은 나무도 바짝 말라 불이 옮겨 붙는다.

구 박사는 “내화수종으로 구성한 정원은 산불을 진화하기보다 불길의 진입을 지체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문화재에 불이 옮겨 붙기 전에 소방관이 산불을 끌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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