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공장’ 야미 사이트 활개

  • 입력 2008년 3월 5일 02시 58분


“한탕 하실 분… 청부 하실 분… 클릭 클릭”

신분 숨기기 쉬워… 작년 6만8000여 개 극성

실제 범죄로 이어져도 사이트 폐쇄 어려워

지난달 2일 함모(30) 씨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 권모(26) 씨 등 두 명과 서울역에서 은밀하게 만났다. 한참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이들은 이틀 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한 여중생을 납치했다.

사건 발생 18시간 만에 경찰에 검거된 이들은 “함 씨가 인터넷에 올린 ‘한탕 하자’는 글을 보고 범죄를 공모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9월에는 경북 성주군에서 보험금을 노린 아내가 인터넷을 통해 남편을 청부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범죄를 청탁하거나 공모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야미(‘어두움’이라는 뜻의 일본어) 사이트’가 최근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따르면 불법 사이트(사회질서 위반)로 신고돼 심의에 오른 건수는 2003년 1만1846개에서 지난해 6만8593개로 479% 급증했다.

윤리위 관계자는 “상당수의 불법 사이트가 ‘한탕 합시다’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표현돼 이것만으로 사이트를 폐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야미 사이트가 이처럼 극성을 부리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최대한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손쉽게 범죄를 공모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의 소통구조가 대면(對面) 중심에서 개별화, 파편화, 익명화되고 있는 현상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야미 사이트를 통해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범행을 공모하다 보니 전과 조회를 통한 주변인 조사가 소용없는 등 경찰 수사도 쉽지 않다.

수서경찰서 사이버범죄팀 관계자는 “최근 일부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 없이 e메일 계정을 받을 수 있어 수사가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장윤식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e메일 한 개를 감청하기 위해 법원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 2, 3일이 소요된다”며 “사이버 범죄는 순식간에 벌어지는 점을 고려해 서버나 e메일에 대한 압수수색과 감청 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야미 사이트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돼 일본 경찰청은 2006년 6월 ‘인터넷 핫라인 센터’를 설치하고 야미 사이트를 집중 단속하는 등 본격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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