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나만의 성공’을 즐긴다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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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보상센터에 속하는 배쪽 줄무늬체를 실험 참가자의 머리 오른쪽(왼쪽)과 뒤에서 촬영한 영상. 참가자가 자신은 돈을 받고 상대방은 받지 못했을 때 이 영역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진 제공 사이언스
뇌의 보상센터에 속하는 배쪽 줄무늬체를 실험 참가자의 머리 오른쪽(왼쪽)과 뒤에서 촬영한 영상. 참가자가 자신은 돈을 받고 상대방은 받지 못했을 때 이 영역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진 제공 사이언스
■왜 김 대리가 기본급 인상보다 성과급에 민감한가 했더니…

연말 성과급을 두둑하게 받은 김 대리. 일할 맛이 난다. 지난해보다 액수도 올랐다. 그런데 회사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는 이내 시무룩해진다.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이 대리가 성과급을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리보다 일을 덜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성과급의 절대 액수가 커졌어도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언짢아지기 마련이다. 최근 흥미롭게도 이 같은 비교가 단순히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생리 현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절대 수입액수가 개인의 만족도를 결정한다’는 전통 경제학 이론을 뒤집는 결과이기도 하다.

○ 독일서 fMRI로 ‘돈벌기 게임’ 분석

독일 본 대학의 경제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은 20대와 30대 남성 38명을 모집한 다음 2명씩 19개 팀을 꾸렸다. 연구진은 각 팀의 2명에게 여러 개의 점이 찍혀 있는 컴퓨터 화면을 보여 줬다. 1.5초 뒤 숫자가 적힌 화면을 보여 주고 첫 번째 화면에 있던 점의 개수가 두 번째 화면의 숫자보다 적으면 ‘적다’ 버튼을, 많으면 ‘많다’ 버튼을 누르게 했다.

5초 후 화면에는 한 팀에 속한 두 참가자의 판단 결과가 함께 나타난다. 이 결과에 따라 연구진은 팀마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맞힌 사람에게 돈을 지급했다. 틀린 사람은 돈을 받지 못하고, 맞힌 사람은 난이도나 속도 등에 따라 30∼120유로(약 4만∼17만 원)를 받았다. 참가자들은 자신뿐 아니라 한 팀에 속한 상대방이 받는 금액도 화면을 보고 알게 된다.

연구팀은 점의 개수를 바꿔가며 이 같은 과정을 300회 반복했고, 그동안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참가자들의 뇌를 촬영했다.

○ 남 틀리고 나 맞았을 때 가장 활발

참가자가 문제를 맞힌 대가로 돈을 받았을 때는 뇌에서 ‘보상센터’라는 영역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틀리면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또 받은 금액의 절대적인 액수가 클수록 보상센터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예를 들어 30유로보다 60유로를 받았을 때 보상센터의 활성이 더 높게 기록됐다.

뇌의 측면과 중앙에 분포하는 보상센터는 좋은 경험을 계속 갈망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영역. 기분을 좋게 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도 분비된다. 참가자가 돈을 많이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더 받고 싶다는 욕구도 생긴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가 받은 금액이 상대방과 차이가 나는 경우. 이때 보상센터 중 특히 배쪽 줄무늬체(ventral striatum)라는 영역에서 변화가 두드러졌다. 한 팀에 속한 두 사람이 모두 문제를 맞혔을 때 상대방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은 사람이 이 영역에서 더 활발한 반응이 나타났다. 둘 다 같은 금액을 받으면 이 영역의 활성은 비슷하게 기록됐다.

배쪽 줄무늬체가 가장 활발히 활동한 경우는 자신은 문제를 정확히 맞히고 상대방은 틀렸을 때다. 결국 ‘공동의 성공’보다는 ‘나만의 성공’에 더 만족감을 느낀 것이다.

연구진은 또 배쪽 줄무늬체에서 혈액의 흐름 변화를 측정해 봤다. 혈액의 흐름이 활발하다는 것은 신경세포가 특히 많이 활동한다는 뜻. 측정 결과 참가자 자신은 돈을 받고 상대방은 받지 못했을 때 가장 높은 수치가 나왔다. 반대로 상대방만 받았을 때는 혈액의 흐름이 가장 낮게, 둘 다 받았을 때는 그 중간 정도로 나타났다. 자신이 상대방보다 월등하다고 생각될 때 보상센터의 신경세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한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사이언스’ 23일자에 실렸다.

○ “남성에겐 사회적 경쟁이 큰 자극제”

연구에 참여한 경제학자 아민 포크 교수는 “개인의 성취감이나 만족감 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절대적’ 수입액수라고 가정하는 전통 경제학 이론을 뒤집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참가자의 뇌가 만족감을 느낀 가장 주요한 요소가 번 돈의 ‘상대적’ 액수였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번 웨버 교수는 “남성에게 가장 큰 자극은 바로 사회적 경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남성 직장인들이 동료의 성과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연구진은 “성별이나 문화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여성과 아시아인을 대상으로도 실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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