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영재학교 144명 기상천외한 과학상상력 책으로 펴내

  • 입력 2007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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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영재ing’를 함께 만든 김재윤 송서우 정성엽 김도훈 강철환 김원경 학생(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 부산=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한국과학영재ing’를 함께 만든 김재윤 송서우 정성엽 김도훈 강철환 김원경 학생(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 부산=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사람들은 영재를 ‘괴짜’라고 한다. 한번 관심을 가지면 남이 뭐라고 하건 꼭 문제를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한 달 동안 머리를 안 감기도 하고. 끼니를 걸러도 수업에 빠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문제를 풀 때까지 자리를 잡고 앉아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운다. 그런 괴짜 영재들이 보는 과학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영재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초중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을 위한 책을 펴냈다. 최근 출간된 ‘한국과학영재ing’는 지난해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한 06학번 144명이 함께 쓴 솔직담백한 과학 이야기다.》

○ 어려운 과학용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

개성만점인 영재답게 글의 소재도 144명 제각각. 그만큼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화성탐사의 역사’를 주제로 글을 쓴 송서우 군은 ‘화성을 지구로 만드는 묘안’을 내놨다. 일반인이라면 화성에 탐사 기지를 세우는 방안을 내놨을 텐데 화성의 환경을 아예 지구처럼 만들자는 발상이 새롭다.

“화성 탐사 역사를 공부하면서 화성의 환경을 아예 지구처럼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평균 온도가 영하 23도인 화성의 대기온도와 공기밀도를 올리기 위해 화성 환경에 적합한 이끼류를 얼음지대에 뿌리면 어떨까요.”

어려운 과학용어를 쉽게 설명하려는 발상도 돋보인다. ‘단백질의 구조’를 쓴 김도훈 군은 유기물의 기본 구조인 단량체, 중합체를 기차에 빗대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단량체를 기차 한 량, 중합체를 단량체가 모여 만든 긴 기차로 보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는 것.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꼭 잘못된다’는 ‘머피의 법칙’부터 골치 아픈 포물선 공식이 위성 안테나와 자동차 전조등의 성능을 좌우한다는 얘기까지, 이들의 관심사는 과학과 수학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 빡빡한 학교생활 중에도 시간 쪼개

처음 아이들에게 책을 한번 써 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당시 1학년 부장이었던 상욱 교사였다.

“나라의 혜택을 받아 공부하는데 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해 보자고 했어요. 학교에서 직접 겪고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후배들을 위한 진로안내 책을 써 보자고 했지요.”

한번 관심을 가지면 세상모르고 푹 빠져버리곤 하는 아이들도 상 교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편집 출판을 맡은 철학아카데미 조광제 사장도 “무료로 책을 찍어 주겠다”며 힘을 보탰다.

공부와 생활을 자율에 맡긴다고는 하지만 학교생활은 예상외로 빡빡하다. 9∼10교시에 이르는 수업, 저녁식사 직후 시작하는 자율학습, 반복되는 숙제와 쪽지시험. 3학년 때까지 30학점 이상 대학 학점을 이수하려면 눈코 뜰 새가 없다.

“책을 만드는 10개월 중 자료를 찾는 데만 꼬박 몇 달이 걸렸어요. 논문도 찾고 인터넷도 뒤졌죠. 무엇보다 과학의 여러 원리를 쉽게 풀어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 “과학은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것”

어린 나이에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자칫 자만에 빠질 법도 하지만 아이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저도 아직 배우는 처지라 이론은 잘 몰라요. 하지만 책을 준비하며 과학이 얼마나 생활에 바짝 다가서 있는지 알게 됐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고분자 화학에 흥미를 가진 김원경 양의 말이다. 김 양은 빨간 바가지를 만드는 고분자 물질이 이제는 환자 생명을 보호하는 첨단 소재로 쓰이고 있다면서 ‘생활 속 고분자 화학’을 쉽게 풀어냈다.

‘수열과 점화식’을 쓴 김재윤 군도 “영재가 아니라도 누구나 간단한 지식만 있으면 어려운 수열도 쉽게 풀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재들은 ‘제 멋에 산다’ ‘일반인과 코드가 안 맞는다’는 선입견은 금물이다.

책을 함께 만들며 아이들은 한층 성숙해졌다. 상 교사와 함께 책 편집에 참여한 정성엽 군은 “지능로봇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동안 모호했던 목표가 좀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지금도 한 달에 몇 차례씩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은 책 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놨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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