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창배]‘생물 바코드’ 프로젝트

  • 입력 2007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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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무서워하는 대상은 오리, 두루미, 매와 같은 새다. 날아가는 항공기와 새가 충돌하면 항공기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새는 팬 블레이드와 압축기를 손상시켜 엔진을 망가뜨리고 항공기 동체를 수십 cm씩 찌그러뜨리거나 조종실 유리창을 깨뜨리기도 한다.

조류 충돌로 엔진이 손상을 입으면 수리비만 수억 원이 들 뿐만 아니라 항공기가 회항하거나 비상 착륙해야 하는 위급 상황에까지 이르므로 항공기 안전운항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1991년부터 10년간 국내 항공사가 항공기 조류 충돌로 입은 재정적 손실이 15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연방항공국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미국 민간항공기의 조류 충돌로 5억 달러의 재정 손실과 50만 시간의 항공시간 지연이 발생한다.

공항과 항공사는 조류 충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새와의 전쟁에 골몰한다. 공항마다 유해 조수 구제반원을 배치한 뒤 여러 도구를 이용해 조류 퇴치 활동을 벌인다. 그렇지만 인력과 장비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어떤 조류가 계절별, 시간대별, 고도별로 충돌하는지에 대한 조사가 거의 없어서 예방활동을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조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첫 단계로 사고 항공기에서 수거한 조류의 혈액, 조직, 깃털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충돌한 조류의 종류를 신속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한 후에 공항 당국, 항공사, 정책 담당자, 생태학자, 건설 관계자가 종합적인 논의와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충돌 원인 조류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충돌한 새의 종류 확인과 사고 방지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제시하는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런 기초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움직임이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신분증을 만드는 작업이다. 2005년 출범한 ‘국제생물바코드컨소시엄’은 전 세계 40개국 130개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생물바코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지구에 서식하는 약 1000만 종(種)의 생물을 대상으로 간편하고 표준화된 기법으로 특정 바코드를 발굴하고 이를 비교해 종을 식별하는 내용이다. 모든 생물의 유전자(DNA) 중에서 판별력이 높은 특정 분자 마커를 발굴하고 이들의 염기배열을 비교분석해 그 차이의 정도에 따라 생물종을 판별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물바코드 개발을 통한 생물의 보전과 관리일 뿐 아니라, 개발기술을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크기의 휴대용 바코드 자동판독기를 이용하면 조류 충돌 원인종을 현장에서 손쉽게 판별할 수 있다. 또 수입 농산물과 임산물에서 발견된 생물이 해충이고 질병을 일으키는 종류인지 검역소에서 신속하게 판독할 수 있다. 홍어와 같은 토종 수산물과 비슷한 저가의 수입 수산물을 수산물검사소에서 바로 판별할 수도 있다.

국제생물바코드컨소시엄의 사무국장인 데이비드 신델 박사가 22일부터 한국을 방문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한국해양연구원을 방문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는 상호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로써 한국에서는 한국해양연구원, 고려대 식물DNA은행을 포함해 3개 기관이 컨소시엄에 참여한다.

생물바코드 연구는 미래 산업의 원천소재인 생명자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이용의 기반기술로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컨소시엄 가입을 계기로 국내 기관과 전문가가 국제 프로젝트를 선도하고 새로운 활용기술을 개발하기를 바란다.

김창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 선임연구원·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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