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우주인 후보 탄생 “우리 꿈은 우주보다 더 넓어요”

  • 입력 2006년 12월 2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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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우주여행 티켓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30세의 남성 연구원과 28세의 여성 공학도에게 돌아갔다. 25일 최종 우주인 후보로 뽑힌 주인공은 삼성종합기술원에 근무하는 고산 씨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과정의 이소연 씨. 이 씨는 이날 생방송으로 방영된 1분간의 연설에서 무중력 상태인 국제우주정거장(ISS) 아래서의 신체 변화를 짤막하고 강한 어조로 설명했다. 고 씨도 ISS에 무사히 도착한 가상 상황을 조리 있게 전달했다.》

삼성종합기술원 고산 씨

복싱대회 동메달등 만능 스포츠맨 “7500m 산 넘었으니 남은건 하늘뿐”

이날 오후 7시 50분 최종 선발자로 뽑힌 직후 고 씨는 “최초의 유인(有人) 우주계획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다. 최종 선발에 나선 6명의 후보 모두 우주에서 활동할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고 소감을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세 살 이후 서울에서 성장한 고 씨는 1남 1녀 중 첫째로 한영외국어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인지과학 협동과정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뒤 삼성종합기술원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고 씨는 대학 시절부터 등산과 축구, 복싱을 즐겨 온 만능 스포츠맨.

2004년에는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에 자리 잡은 해발 7500m 높이의 무스타그아타 산을 정복하고 아마추어 신인 복싱대회에 참가해 동메달을 딸 정도로 신체조건이 뛰어나다.

후보 가운데 자신감이 가장 넘치는 인물로 꼽힌 고 씨는 그동안의 선발 과정에서 인내심이 월등한 후보로 평가되기도 했다.

고 씨는 “어린 시절 막연하게 꿨던 꿈이 실현됐다”며 “홀로 키워주신 어머니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 씨와 중고교 동창이면서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안태진(30) 씨는 “산이가 평소 대인관계가 원만했고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우주에 가서도 외국인들과 함께 어려운 임무를 잘 수행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KAIST 박사과정 이소연 씨

KAIST 팔씨름 챔프-태권도 3단 “우주선 키 커져 날씬한 미인 될 것”

이날 고 씨와 함께 최종 후보에 선정된 이 씨는 동료 경쟁자 사이에서는 이미 여성후보 1순위로 꼽혔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통통한 체형의 이 씨는 최종 관문이던 1분 스피치에서 “우주에서는 몸속 단백질이 줄어들어 살도 빠지고 키도 5cm 커지기 때문에 나도 미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광주(光州)과학고를 거쳐 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현재 같은 학교 미세전자기계시스템박사 과정에 있는 이 씨는 12월 3∼8일 러시아에서 실시됐던 현지 적응평가와 무중력 테스트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씨 역시 조깅과 운동을 좋아하는 스포츠 우먼. 태권도 공인 3단. 학부 2학년 때부터 박사 1년차인 최근까지 교내 팔씨름 대회에 출전해 한번도 진 적이 없을 정도. 대학생활 4년 내내 록그룹에서 보컬로 활동한 맹렬 음악광이기도 하다.

이번 최종 선발에 참가했다 탈락한 박지영 씨는 “힘들 때마다 맏언니 격이던 이 씨가 잘 돌봐줬다”며 “여성 과학자를 대표해 성공적으로 우주 임무를 마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여러 차례의 인터뷰 과정에서 평가위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힘들었다”면서도 “평가를 하나 둘 통과하면서 KAIST 연구실의 분위기도 살아나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고 산 “균형감각 시험 ‘틸팅 테스트’ 제일 힘들었다”

이소연 “우주공간 근육수축등 신체변화 가장 궁금해”

“우주에 가면 실제 세상과 가짜 세상이 혼재하는 영화 ‘트루먼 쇼’가 떠오를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이 진짜 우주인지를 꼭 확인하고 싶다.”

이소연 씨는 생방송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주에서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산 씨는 “우주에서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음미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두 사람 모두 약간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다음은 최종 발표 후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소감을 밝혀 달라.

“혼자 힘으로 나와 동생을 훌륭히 키워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고 씨)

“최선을 다해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우주인이 되겠다. 어릴 때 누구나 바랐던,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는 꿈을 대신 이뤄 드리겠다.”(이 씨)

―과학도로서 우주에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실험은….

“우주에서 물을 얼려 보는 실험의 결과가 특히 궁금하다. 가장 기대가 되는 실험이다.”(고 씨)

“근육이 줄어들거나 척추가 늘어나 키가 크는 등의 신체 변화가 가장 궁금하다. 기계나 전자 쪽을 전공했으니 이 분야의 실험도 해 보고 싶다.”(이 씨)

―여성 한 명이 분명 뽑힐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는데….

“생방송 직전 단장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여자이기에 뽑히는 게 더 치욕적이라고 말씀드렸다. 정정당당하게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훈련하다가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적합한’ 사람이 우주에 갈 거라고 생각한다.”(이 씨)

“소연이가 여자라서 뽑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었다.”(고 씨)

―가장 재미있고 어려웠던 테스트는….

“균형감각을 시험하는 ‘틸팅 테스트’가 가장 힘들었다. 약물을 몸에 넣자마자 초반부터 몸에서 이상 반응이 나타났지만 무사히 참고 견뎠다. 경남 사천비행장에서 훈련기에 탑승했을 때 교관이 조종간을 넘겨줘 실제로 몰아 봤다. 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고 씨)

“러시아에서 한 무중력 테스트가 재미있었고 인성면접과 인터뷰가 가장 어려웠다. 계속 학교에 있어서 기업 공채 면접 등을 통해 나를 홍보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이 씨)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유인 우주비행은 우주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다. 미래에 국산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한 노하우를 쌓는 데 의의가 있다.”(고 씨)

“눈으로 보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게 다르듯 직접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것과 다른 나라의 보고를 간접으로 듣는 것은 천양지차라고 생각한다.”(이 씨)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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