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없이 뇌속까지 콕 찔러 본다… 머리카락 굵기 내시경 개발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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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게 내시경은 신체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내시경의 크기를 작게 할 경우 선명한 화질을 얻기 힘들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팀은 이 점에 착안해 머리카락 굵기지만 입체(3D)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내시경을 개발했다. 이 기기는 내부 장기의 진단법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팀장인 하버드대 의대 피부과의 기예르모 티어니 교수는 오늘날의 내시경이 갖고 있는 문제를 ‘크기 대(對) 화질’로 요약한다.

내시경으로 대뇌를 촬영한다거나, 태아를 관찰한다거나, 미세한 관(管) 조직을 헤치고 나가려면 크기가 작아야 한다. 렌즈 크기가 수 mm인 큰 내시경은 충분한 화질을 제공하지만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조직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야 한다.

티어니 교수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내시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개발한 내시경은 머리카락만큼 가늘고 구부릴 수도 있으며 의사들에게 또렷한 입체 영상을 제공한다.

티어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같은 혁신이 가능해진 것은 새로운 광학적 접근법을 사용한 덕분이다.

지금까지의 미세 내시경은 여러 가닥의 광섬유로 백색 광선을 투사해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찍는다. 그러나 그가 개발한 새 내시경은 빛이 광섬유의 말단에서 무지갯빛의 스펙트럼으로 갈라진다.

파장이 다른 각각의 빛은 조직의 다른 부분에 반사된다. 반사된 빛은 환자 외부의 분광계(分光計)로 모여든다. 이 장치는 반사된 빛을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빛의 강도로 명암을 나타낸다. 또 하나는 모인 빛을 파장별로 분석해 조직의 굴곡(요철)을 나타낸다. 이어 컴퓨터는 조직의 명암과 요철 정보를 합쳐 입체 영상을 만들어낸다.

새로 개발된 장비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살아 있는 쥐의 배에 생긴 종양을 촬영했다. 연구진은 쥐의 배에 미세한 구멍을 뚫은 뒤 가느다란 내시경을 찔러 넣었다. 내시경이 제공하는 입체 영상은 복막에 생긴 종양을 뚜렷이 보여 줬다. 지금까지 굵기의 기기로는 제공할 수 없는 또렷한 화상이었다.

의사들이 인체 안에 이 같은 내시경을 집어넣는다면 유방암이나 췌장암 등의 조기 진단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티어니 교수는 말했다.

이 기기를 이용하면 지금까지 엄두도 못 냈던 수술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티어니 교수는 설명했다. 이 정도의 작은 기기라면 뇌 속으로 내시경을 집어넣거나 양막 안의 태아를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취 없이 조직을 뚫고 들어가는 내시경 관찰도 할 수 있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웨인 렌서 소화기과장은 “이 기술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렌서 과장은 오랫동안 아동들의 소화기 질환을 다뤄 왔기 때문에 ‘크기 대 화질’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내시경이라면 췌장과 같은 연약한 장기 내부를 촬영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입체 이미지라면 평면 이미지로는 관찰할 수 없었던 질환도 진단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 시험 단계인 이 기기를 인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먼저 안전 문제를 테스트해야 하며, 색채와 해상도를 향상시켜야 하고 픽셀 수도 늘려야 한다. 현재까지의 해상도는 의사들이 쓰고 있는 미세 내시경보다 약간 나은 정도지만 앞으로 정밀도를 개선해 10배 정도 해상도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티어니 교수의 동료인 드비어 옐린 씨는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머리카락 굵기의 장비에서 가능해진다면, 의사는 사람 몸속을 더 안전하고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돼 관련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0.1mm 굵기의 혁신… 치료용은 갈길 멀어”

“머리카락 굵기의 내시경 기술은 한마디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까지는 가늘어 봐야 위나 십이지장용 내시경의 경우 9mm, 담도나 췌장 내시경이라면 2.5∼3mm에 그쳤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서동완 교수는 “내시경 관이 0.1mm 안팎으로 가늘어진다면 마취 없이도 몸속으로 내시경을 집어넣어 장기와 조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마취용 주사침이 내시경 관을 넣는 것보다 오히려 더 아플 겁니다. 즉, 환자가 고통을 덜 느끼면서 내시경으로 어느 부위든 검사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기는 거죠.”

서 교수는 “내시경이 가늘어지는 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화소 수의 제한만을 놓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내시경으로는 치료적 의미의 검사를 하기 어렵습니다. 내시경과 함께 조직을 떼어 내는 설비가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즉, 진단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을 뿐 작은 종양을 제거하거나 특정 부위를 지지는 등의 치료를 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는 “머리카락 굵기의 내시경은 대단히 고무적인 발전이지만 치료용으로까지 활용 범위를 확대하려면 부가적인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양막: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얇고 투명한 막으로, 안에는 양수가 차 있다. 태아는 양막 안의 양수 속에 떠서 자람으로써 외부의 충격과 감염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양막은 임신 후 5∼9일에 형성되며 분만할 때 파열된다.

:분광계:

빛을 파장별로 분류해 각 파장대의 에너지를 측정하는 장치. 일정한 광원의 빛을 파장별로 나누어 비추게 하는 ‘분광기’와는 구별된다. 본문에 소개된 분광계(Spectrometer)는 일정한 빛에너지가 아니라 형태가 있는 영상 이미지를 파장별로 나누어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분광계보다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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