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보고 싶니? 흰 벽만 있으면”… 휴대전화로 크게 쏜다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휴대전화가 고화질(HD) 영상을 투사할 수 있는 프로젝터로 변신한다면?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최근 탄소섬유를 이용해 이 같은 꿈을 실현하는 데 한발 다가갔다고 밝혔다. 이 장치를 이용한 프로젝터는 주사위 한 개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50cm 거리에서 너비 1m 정도의 고해상도 영상을 투사할 수 있다. 30인치 이상 크기의 HD TV가 휴대전화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 기술의 열쇠는 가로 0.5mm 정도에 불과한 거울로, 탄소섬유에 부착된다. 압전(壓電)소자가 신호를 받아들여 진동하면 탄소섬유는 진동을 증폭시켜 거울을 움직인다. 거울에 레이저빔를 쏘면 거울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각도로 빛을 보낼 수 있다.

현재까지는 한 방향으로 거울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상태지만 연구진은 앞으로 거울이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영상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적녹청 3색의 레이저를 사용해 컬러 영상을 만들어 내는 데도 기술적인 문제가 없다.

오늘날 이미 소형 거울을 응용한 수많은 다른 초소형전자기계시스템(MEMS) 기술들이 디스플레이 장치에 응용되고 있다. 텍사스 주 댈러스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는 수백만 개의 극소 거울로 이루어진 디지털광학프로세서(DLP) 칩을 개발한 바 있다. 수백만 개 거울의 각각은 광원에서 오는 빛을 ‘on’과 ‘off’의 방향으로 바꿔 비춤으로써 영상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이 칩은 수많은 DLP TV와 프로젝터에 쓰이고 있다.

워싱턴 주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비전사의 경우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와 달리 코넬대처럼 단 하나의 미세 거울을 사용한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도 탄소섬유를 응용한 것은 아니지만 컬러 영상장치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코넬대 연구진은 탄소섬유를 이용한 디스플레이가 이 같은 경쟁 기술들보다 장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거울의 빠른 진동이 가능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넓은 각도로 투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이클 톰슨 재료공학 교수는 “탄소섬유는 많이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아 거울이 마음대로 넓은 각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넓은 투사각 실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빠른 고주파 진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HD 영상을 만들어 내는 데 필수적인 이점이다. 탄소섬유에 부착된 거울은 1초에 3만5000번까지 진동하며, 이는 1280×768픽셀의 HD 화면을 1초에 60번이나 바꿀 수 있다.

밍 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전자공학 및 컴퓨터과학 교수는 HD 영상에 필요한 요건으로 거울의 진동 외에 크기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HD 영상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큰 거울을 이용할 경우 거울이 빨리 진동할 수 없었다. 톰슨 교수는 탄소섬유에 HD 영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0.5mm 크기의 거울을 부착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더 큰 거울도 부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생산 단가를 낮추는 일이 필수적이다. 최근까지도 연구자들이 값싼 실리콘 소재를 사용한 거울 진동식 투사장치 개발에 집착했던 것도 바로 싼 가격 때문이었다.

코넬대 박사과정 학생으로 탄소섬유 개발 과정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샤이언 데사이 씨는 이 점에 주목해 톰슨 교수와 함께 기존의 실리콘 디스플레이 생산기술을 응용한 생산 과정을 개발했다. 이 경우 저렴한 실리콘 공정을 응용하다 맨 마지막 단계에 탄소섬유를 장착하면 공정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규모 생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는 수작업으로 탄소섬유를 부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톰슨 교수는 연구진이 1년 안에 시험판 프로젝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용화까지는 앞으로 3∼5년이 걸릴 것으로 그는 내다보고 있다.

:압전소자:

결정판에 힘을 가해 변형을 주면 표면에 전압이 발생하며, 반대로 결정판에 전압을 걸면 힘이 발생하는 압전효과를 응용한 전기소자. 압전효과는 1880년 프랑스의 자크 퀴리와 피에르 퀴리 형제가 처음 발견했다. 마이크로폰, 스피커, 초음파탐지기, 수정시계의 진동자, 원거리 통신회로 등에 이용된다. 최근에는 카메라 자동초점 기능 등 첨단장치에도 응용되고 있다.

:MEMS:

육안으론 식별이 어려운 초소형 기계 제작 기술을 뜻한다. 실리콘이나 세라믹 등의 반도체 재료에 광(光)반응 물질을 씌우고 빛 에너지로 깎아내 3차원 구조를 만드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며, 감지 소자의 기능을 하는 마이크로 센서, 구동장치인 마이크로 모터 등을 제작한다. 작은 공간에 여러 소자를 집적할 수 있고 에너지 사용량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탄소섬유 원하는 모양대로 만드는 게 과제” 국민대 신현정 교수

전철에서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모습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앞으로는 ‘흰 벽’만 있으면 휴대전화를 프로젝터 삼아 큰 HD 화면도 감상할 수 있게 될까.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기기에 부착할 수도 있고, 캠코더에 결합해 방금 촬영한 풍경을 대형 화면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실리콘을 이용한 초소형 프로젝터 개발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왔는데, 탄소섬유가 돌파구를 열고 있군요.”

국민대 신현정(신소재공학) 교수는 “탄소섬유는 강력하게 결합된 탄소 결정을 섬유 형태로 만든 것이므로 가벼워 초고주파의 진동이 가능하다”며 “코넬대 팀이 이런 특성을 이용해 좋은 착안을 했다”고 말했다.

“탄소나노튜브 기술을 응용한 탄소섬유는 머리카락의 5만분의 1 굵기로 만들 수 있지만 케블라 섬유보다 17배나 강해 초고감도 센서, 정밀한 주파수 발생기 등에 폭넓게 응용될 수 있습니다.”

반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원하는 성질과 형태 그대로 탄소나노튜브를 생산하는 일은 아직 어렵다는 것. 특히 원하는 위치에 적당한 극미(極微) 구조물을 만드는 조작 기술을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단계라고 그는 설명했다.

신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는 탄소섬유 외에 첨단 전자 소자(素子) 분야에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는 21세기 첨단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