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제도 이후 고가 단말기 선호하는 소비심리의 정체는?

  • 입력 2006년 4월 20일 15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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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의 눈앞에 두 대의 휴대전화가 있다.

하나는 30만 원 짜리, 또 다른 하나는 60만 원 짜리다.

바꾼 지 1년 밖에 안 된 지금의 휴대전화도 한동안은 꽤 쓸만하다.

하지만 1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2008년 3월까지 딱 한 번 그 '기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구매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고민 끝에 결국 60만 원짜리를 집어 든다.

기왕 보조금을 받는데 왠지 비싼 것을 사야만 '밑지는' 것 같지 않다. 그는 공짜로 받은 듯한 10만 원 때문에 '거금' 50만 원을 썼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조금 제도 이후 고가(高價) 단말기를 선호하는 소비 심리의 정체, 과연 무엇일까.

●효용 극대화와 희소성의 원리

지난달 27일 휴대전화 보조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이동통신 3사의 휴대전화 매출은 고가제품이 단연 우세하다.

SK텔레콤의 경우 보조금 지급 이전인 지난달 1일부터 26일까지 31.5%였던 50만 원 이상 고가 단말기의 판매 비중은 제도 시행 직후부터 14일까지는 44.4%로 12.9%포인트 늘었다.

반면 22.9%였던 30만 원 이하 저가(低價) 단말기의 판매 비중은 15.0%로 7.9%포인트 줄었다. KTF와 LG텔레콤에서도 고가 단말기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효용 극대화 원칙으로 설명한다.

소비자들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만족을 높이기 위해 가격이 떨어진 재화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보조금 혜택으로 인해 '실질적' 가격이 내렸다고 해서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는 없는 일. 대신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는 있게 된다.

보조금은 일정 시점까지 딱 한 번 받을 수 있어 희소성의 원리도 작용한다.

박재항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은 "논란 끝에 시행된 보조금 제도를 기다렸던 소비자들이 제도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불확실한 미래보다 눈앞의 가치를 빨리 실현하려는 조급함에 비싼 것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휴대전화는 필수품인 동시에 과시품

휴대전화를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데도 바꿨다면 실제 지불 금액보다 보조금에 민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한 비용을 썼다는 죄책감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할인 혜택으로 떨쳐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자기 합리화'이다.

휴대전화는 '육장육부(六臟六腑)'로 비유되는 현대인의 필수품이면서 동시에 남에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과시품도 된다. 이 때문에 미리 예산을 계획하고 휴대전화 매장에 들어섰어도 비싼 제품 비용에 관대해지는 '트레이드 업(Trade up)' 현상도 발생한다.

필수품은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수요가 급격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다는 얘기다. 바로 이 점을 노린 제조업체들은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우며 고가 단말기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마진율이 낮아 판매촉진 비용을 빼고 나면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저가 단말기를 많이 생산할 이유가 없다.

차용호 LG전자 한국마케팅전략그룹 부장은 "보조금 제도 초기에는 트렌드에 민감한 '얼리 어댑터'들이 비싼 휴대전화를 선뜻 구매하고 있지만 브랜드와 가격을 신중히 따지는 대다수 '합리적 소비자'들도 앞으로 같은 양상을 보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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