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구소 강성호 박사 저온생물 발굴 구슬땀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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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술로는 냉동인간을 해동시킬 때 신체 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주인공이 냉동 상태에서 깨어나는 모습. 동아사이언스 자료 사진
현재 기술로는 냉동인간을 해동시킬 때 신체 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주인공이 냉동 상태에서 깨어나는 모습. 동아사이언스 자료 사진
○ 미생물 등 50여 종 확보… 세계 선두권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강성호 박사는 9일 3주 일정으로 남극으로 떠난다. 매년 1월이면 남극을 찾은 지가 올해로 벌써 19년째. 흔히 ‘남극 탐사’ 하면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광물자원이나 온난화로 인한 지구기후의 변화를 연구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강 박사의 관심은 ‘천연부동액’이다. 영하 30도를 넘는 혹한의 남극 겨울(6∼9월)을 지내고 여름(11∼2월)까지 살아남은 남극 식물과 미생물을 찾아 ‘얼음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결빙방지단백질을 발굴하려는 것.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 남극에서 현재 세계 각국은 소리 없는 ‘생물자원 쟁탈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냉해에 견디는 작물은 물론 줄기세포, 혈액 등을 효과적으로 냉동 보관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미 저온에서 잘 활동하는 식물과 미생물 50여 종을 확보한 상태여서 세계에서 선두주자에 속한다.

남극 해빙에서 얼음덩어리를 채취해(①) 실험실에서 표면을 칼로 긁어낸다(②). 긁어낸 얼음 내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돌말이라는 미생물이 발견되는데(③) 이들이 결빙방지물질을 분비해 주변이 얼지 않은 모습이 관찰된다. 사진 제공 극지연구소

○ 얼리는 것보다 녹이는 게 어렵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알코르 생명연장 재단’은 1972년부터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이 불치병으로 사망하면 몸속의 혈액을 모두 뽑아내고 특수 부동액으로 대체한 후 영하 196도에서 급속 냉동시킨다. 먼 훗날 불치병을 정복했을 때 냉동인간을 녹여 생명을 연장시키겠다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얼린 몸을 녹이는 일이 만만치 않다. 영하 196도에서 서서히 온도를 높이며 시신에서 부동액을 빼내고 혈액을 몸에 다시 투여해야 한다. 문제는 해동과정에 형성되는 얼음의 ‘결정화’ 현상. 영하 130도부터는 시신 내부에 남아 있는 수분이 날카로운 ‘얼음 결정’을 만들면서 세포를 파괴한다는 것.

강 박사는 “이론적으로 수분은 영하 196∼영하 130도에서는 얼음 결정을 형성하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얼어붙지만 영하 130도 이상에서는 뾰족한 결정이 만들어지면서 얼음이 된다”며 “냉동인간을 해동시키는 과정 자체가 신체에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결빙방지단백질 발굴해 특허 출원

과학자들이 남극에서 천연부동액을 찾는 것은 바로 완벽한 해동법을 찾기 위해서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남극산 물고기의 피에서 천연부동액을 발굴해 왔다. 물고기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얼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혈액 내 특수 단백질들이 부동액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고기 수가 한정돼 있어 단백질의 가격이 g당 1000만 원 정도로 비싸다.

한국은 식물과 미생물에 역점을 두고 있다. 강 박사팀은 2004년 11월 남극의 해빙 속에 사는 돌말이라는 미생물에서 천연 동결억제제를 찾아내 국제저널 ‘저온생물학회지’에 보고했다. 이를 포함해 저온에 잘 견디는 미생물 3종을 확보하여 결빙방지단백질 관련 특허를 출원 중이다.

농업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소의 서효원 박사는 극지연구소의 위탁을 받아 올해부터 남극잔디와 남극개미자리라는 식물에서 ‘저온 저항성’ 유전자를 발굴하고 있다. 그는 “올해 안에 유전자를 찾아 내년에 감자에 주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 박사는 “저온저항성 유전자가 주입된 감자는 영하의 기온에서도 좋은 품질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남극의 식물과 미생물 결빙방지단백질 개발 분야에서는 한국이 미국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상태”라며 “특허를 먼저 취득해 세계 ‘냉동보존시장’을 점유하려는 경쟁이 남극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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