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경]식품안전 기준조차 없는 정부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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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약병이 있다. ‘먹어도 된다’는 표지는 당연히 없지만 ‘먹지 말라’는 경고도 없다. 이 약을 누가 먹었다고 해보자. 먹어도 된다고 한 적이 없는데 기어코 약을 먹은 무지한 사람이 문제일까, 아니면 ‘먹지 말라’는 표지를 붙이지 않은 사람이 문제인가.

국내산 양식 송어, 향어에서 발암 의심 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됐다는 발표를 접한 양식업자들은 “정부가 말라카이트그린을 쓰지 말라고 한 적이 없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말라카이트그린의 식용 수산물에 대한 사용 금지 여부에 대해 “식용에 써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식용 사용을 금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한술 더 떠 수산물 양식에 써도 된다고 했을 정도다.

이는 식품 안전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국내에는 말라카이트그린을 ‘식용 수산물’에 쓰지 말라는 ‘적극적 금지’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

반면 유럽연합(EU)은 2001년 스코틀랜드 양식 연어에 대한 말라카이트그린의 잔류 분석을 실시했고 이듬해 칠레산 연어에서도 말라카이트그린이 나오자 ‘식품안전상의 문제’로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에서는 어류의 치료를 위해 말라카이트그린 제품을 쓰려면 수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일본은 2003년 7월 농림수산성 소비안전국에서 모든 양식 수산동물을 대상으로 미승인 의약품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말라카이트그린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처럼 ‘적극적 금지’가 필요한 까닭은 양식업자들이 1949년 이후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말라카이트그린을 써 왔고 대체 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쓸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식품 안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없는 것은 중국산 김치 파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납의 유해성에 대한 기준이 없어 중국산 김치에서 검출된 양의 납이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로 논란이 벌어졌다.

납 김치 파동 이후 식품 안전 문제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질책을 받기까지 하자 식약청은 6일 김치 찐쌀 등 국민이 즐겨 먹는 9개 식품을 집중 관리하고 품목별 위해 물질 잠정허용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늘 그래왔듯, 또 뒷북이다.

김희경 교육생활부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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