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은 지금 경쟁중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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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자연이나 사회 현상을 이해할 때 우리 신체에서 가장 믿을 만한 도구는 ‘눈’이란 얘기다. 그만큼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며 실제로 뇌 전체의 절반 가까운 부분들이 시각정보처리에 관여한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 보면 우리의 시각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

먼저 그림 1을 보자. 왼쪽에는 미녀, 오른쪽에는 야수가 그려져 있다. 이때 여러분의 시선 초점은 지면에서 미녀와 야수 중간에 놓자.

이번에는 시선 초점을 지면과 눈 사이 적당한 곳에 맞춰 보자. 이를 위해 손가락 끝을 응시한 채 지면으로부터 눈 가까이로 천천히 이동시켜 보자. 어느 순간 미녀와 야수 그림의 중간에 두 가지 이미지가 겹친 모습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겹친 모습은 정지해 있지 않다. 한동안 미녀가 보이다 어느새 미녀는 야수로 둔갑하고 시간이 흐르면 야수가 미녀로 변신하는 지각적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것이 바로 ‘두 눈의 경쟁(양안경쟁·binocular rivalry)’ 현상이다. 미녀와 야수처럼 양쪽 눈으로 매우 다른 이미지가 들어오면 이 두 이미지는 우리의 의식을 서로 차지하려고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두 개다. 따라서 사물을 바라볼 때 왼쪽 눈과 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는 서로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뇌는 현명하게도 이 두 가지 정보를 잘 조화시켜 낸다. 그 결과 양쪽 눈에 맺힌 이미지들의 미세한 차이로부터 깊이를 계산해 사물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두 눈은 제각기 자신의 정보가 ‘우세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뇌는 순간적으로 혼란감에 빠진다. 어느 쪽이 옳은 정보일까? 특히 두 눈으로 들어온 정보가 전혀 다른 종류일 때 뇌의 혼란감은 심해지고 결국 어느 한쪽만을 선택적으로 인식한다. 또한 그 선택을 끊임없이 바꾼다.

서울대 심리학과 이상훈 교수는 최근 수년간 양안경쟁의 비밀을 파헤치는 작업에 한창이다. 왜 이런 연구에 몰두할까?

“사물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지각이 달라지는 ‘양안경쟁’은 ‘의식의 과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물리적 실재와 잠시 분리돼 출렁이는 의식을 따라 함께 출렁이는 뇌 활동을 찾아내는 것은 마음의 생물학적 기반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이죠.”

그는 최근 미국 뉴욕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양안경쟁 중 일어나는 의식의 변화과정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했다. 양쪽 눈으로 들어온 두 가지 정보는 뇌 뒷부분의 제1차 시각피질(V1)에서 경쟁을 벌이는데(그림 2) 이때 한쪽이 우세해지고 다른 쪽이 약해지는 변화 과정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으로 처음 포착한 것. 두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정보가 V1에서 격렬하게 다투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부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프론티어사업단’(단장 김경진)의 지원으로 진행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5일자에 게재됐다.

이 교수는 양안경쟁 현상이 난치성 신경질환의 조기 진단이나 원인 규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울한 기분과 행복한 기분이 예측불허로 반복되는 조울증이 한 가지 사례죠. 조울증 환자들은 양안경쟁 중 양 눈의 이미지가 교대되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임상연구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양안현상의 패턴을 잘 측정한다면 신경질환의 진단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요.”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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