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자살 사건, 동료위한 희생인가 미련한 죽음인가

  • 입력 2004년 12월 7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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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해변으로 몰려와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곧잘 벌어지고 있다. 가족 중 한 마리가 뭍에 갇힌 것을 다른 구성원들이 구하려다 참사를 당했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고래가 해변으로 몰려와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곧잘 벌어지고 있다. 가족 중 한 마리가 뭍에 갇힌 것을 다른 구성원들이 구하려다 참사를 당했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레밍(나그네쥐)은 먹이가 떨어지면 바다로 뛰어들어 집단자살을 감행한다.’ ‘꿀벌은 전투에서 생명을 잃는 것을 각오하고 적에게 침을 꽂은 후 사망한다.’ 지난달 말 호주와 뉴질랜드 해안 세 군데에서 고래 수십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동물의 자살’에 관한 주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수년에 한 번씩 고래의 떼죽음이 보고되고 있지만 그때마다 전문가들도 속 시원한 원인을 밝히지 못해 해석이 구구했다. 때때로 동물의 죽음은 ‘무리를 위한 자기희생’이나 ‘몸을 던지는 동료애’ 때문인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그네 쥐’ 미끄러져 떼죽음

무리를 위해 자살을 감행한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가 노르웨이에 사는 레밍이다. 레밍은 3, 4년마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봄이나 가을 밤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바닷가에서 막다른 벼랑에 다다르면 바다에 빠져버린다는 얘기. 늙은 쥐들이 스스로 ‘집단자살’을 행함으로써 나머지 젊은 무리가 배곯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준다는 해석이 세간에 회자돼 왔다.

하지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생물학과 데니스 치티 교수가 1996년 발간한 저서 ‘레밍은 자살하는가? 아름다운 가설과 추한 사실’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먹이를 찾아 우왕좌왕하던 레밍 집단이 벼랑에 다다랐을 때 그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떼죽음을 당한다는 것. 어느 동물이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욕구가 강한 것이 본능인데 이를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을 위하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치티 교수의 저서 이후로 적어도 학계에서는 더 이상 레밍에 대한 구구한 논의가 사라졌다고.

동물 가운데 가장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는 것으로 알려진 침팬지. 어미가 사망한 후 어린 침팬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둔 사례가 보고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꿀벌, 적에게 독침 꽂고 죽어

동료를 위해 무모하게 몸을 던져 적과 싸우는 동물의 모습 역시 ‘자살’과 가깝게 보인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꿀벌이나 개미처럼 무리를 지어 사는 사회성 곤충에게서 이런 사례들이 곧잘 발견된다”며 “하지만 동료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꿀벌의 무리에서 일벌은 적이 나타나면 여왕벌을 보호하기 위해 침입자에게 ‘독침’을 꽂고는 한두 시간 후에 사망한다. 그런데 침의 돌기가 위로 솟아 있어 적의 몸에 꽂힌 침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사실 일벌의 입장에서 적에게 침을 ‘쏘고 빠지는’ 작전이 더 안전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침이 잘 빠지지 않아 무리하게 힘을 주다 보니 그만 몸속 내장의 상당부분이 같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를 두고 과연 자신의 의지대로 목숨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을까.

싸움이 끝났을 때 목이 잘린 채 적의 머리를 물고 있는 일본왕개미의 모습. 자신의 몸이 잘려나갈 때까지 처절하게 버티는 것이 과연 자기희생적인 행동일까. -사진=최재천 저 ‘개미제국의 발견’

최 교수는 또 “개미는 적과 싸울 때 일단 상대를 물면 다른 적이 자신의 허리를 끊어도 절대 놓지 않는다”며 “일단 몸을 추스르고 다시 적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고래의 떼죽음에 대해 한 가지 해석으로 ‘가족애’가 등장했다. 가족 가운데 한 마리가 뭍에 갇히는 바람에 형제자매가 구하려고 몰려들다 참사를 당했다는 것. 하지만 고래는 원래 가족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동물이므로 식구를 구하려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몰살을 당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박시룡 교수는 “이번 고래 사건에 대해 코가 병균에 감염됐다거나 미 해군 장비의 소음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었다는 등 해석이 다양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침팬지, 가족 죽으면 우울증 빠져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침팬지. 놀랍게도 침팬지는 가족의 죽음을 접하면 우울증에 빠져 숨을 거두기도 한다.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들려준 얘기 하나. 어느 날 어미가 사망하자 어린 침팬지가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다 한 달 후 그만 숨을 거뒀다.

최 교수는 “갓 낳은 자식을 잃자 몇 주씩이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한 어미 침팬지가 어린 침팬지를 양녀로 삼고서야 우울증에서 벗어난 사례가 있다”며 “하지만 이를 두고 사람처럼 죽음의 의미를 인식하고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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