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나이들어 그러려니”…녹내장 방치하면 실명

  • 입력 2004년 11월 7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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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기기로 각막 두께를 측정하는 모습. 각막 두께는 라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판정하는 기준으로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녹내장 진단을 위해 안압과 함께 각막 두께를 재는 경우가 많다.사진제공 세브란스병원
초음파 기기로 각막 두께를 측정하는 모습. 각막 두께는 라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판정하는 기준으로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녹내장 진단을 위해 안압과 함께 각막 두께를 재는 경우가 많다.사진제공 세브란스병원
노모씨(58·자영업)는 지난해부터 눈이 침침했다.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다 최근에야 안과를 찾았다. 검사 결과는 녹내장 말기. 시신경이 거의 다 망가져 치료를 하더라도 실명할 위험이 크다는 진단이었다.

녹내장은 시신경 섬유세포가 말라죽어 시야가 좁아지는 병이다. 환자의 90% 이상은 말기까지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치료시기를 놓쳐 시력을 잃는다.

최근 안과학계에서는 시야가 좁아지기 전에 녹내장을 미리 진단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달 말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안과학회(AAO)의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각막 두께로 녹내장 위험을 예측하는 연구에 관심이 모아졌다.

▽각막 얇을수록 녹내장 위험=시신경 손상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 눈 하나에 120만개씩인 시신경 섬유세포는 매년 5000여개가 죽는다. 50만개 이상 망가지면 시야가 좁아진 것을 느끼게 된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망가지는 것.


시신경이 빨리 죽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이, 가족력, 고도근시, 당뇨, 고혈압 등이 녹내장과 관련이 있다고 조사됐을 뿐이다. 이런 요인과 무관한 경우도 많아 녹내장 위험을 미리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개업의인 조슈아 킴은 이번 학회에서 “44명의 녹내장 환자를 7년 6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각막이 얇을수록 시신경이 더 빨리 망가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세브란스병원 안과 홍영재 교수팀이 안과 환자 643명의 각막 두께를 측정한 결과 평균치는 555μm였다. 녹내장 환자는 537μm로 더 얇았다.

시신경이 망가지는 것은 신경섬유다발이 통과하기 위해 안구 뒤쪽 공막에 난 구멍 때문. 안압이 높아지면 가는 체처럼 생긴 이 부분이 변형돼 시신경 섬유를 짓누른다.

▶그림 참조

공막이 얇을수록 변형되기 쉬우므로 시신경을 다칠 위험이 커진다. 각막이 얇을수록 시신경 손상이 빠르다는 연구결과는 안구 앞쪽 각막의 두께로 안구 뒤쪽 공막의 두께까지 판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막을 얇게 깎아내는 라식은 공막과는 무관하므로 녹내장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라식 후 얇아진 각막 때문에 안압이 실제보다 낮게 측정된다. 가족력 등 녹내장 위험 요인을 가진 사람은 라식수술 전에 반드시 녹내장 검사를 받아야 한다.

▽피부색과 녹내장=각막 두께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인종별 녹내장 유병률 차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인도의 이슈티악 아흐메드는 다양한 인종의 환자 1149명을 모아 각막 두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인, 인도인, 아시아인, 백인 순으로 각막이 얇았다. 인종별 녹내장 유병률 순서는 각막 두께 순서와 일치한다.

이 결과를 보면 백인보다 각막이 얇은 아시아인은 녹내장 위험이 크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안압이 높아질 위험이 크므로 40대 이후에는 해마다 녹내장 검진을 받아야 한다.

(도움말=서울대병원 안과 박기호 교수, 세브란스병원 안과 홍영재 교수, 서경률 교수)

뉴올리언스=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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