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행복한 세상]현장에서/카메라폰에서 자유롭고 싶어요

  • 입력 2003년 11월 19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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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누가 카메라폰을 들고 있으면 몸이 굳어집니다….’

지난 여름 자녀들과 함께 수영장에 놀러 갔다 왔다는 한 어머니의 e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탈의실에서 나온 유치원생 아들이 한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차 말이 안 나왔습니다. 웬 아저씨 하나가 고추를 보여 달라고 하기에 아이는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고, 그러자 아저씨는 들고 있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는 가 버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이 잠시라도 ‘변태’와 가까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한동안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났다고 했다.

정보통신부가 앞으로 모든 카메라폰에 ‘찰칵’ ‘하나, 둘, 셋’ 등 셔터 소리가 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진동이나 매너모드로 전환해 벨소리를 없애도, 셔터소리 만큼은 복잡한 도로의 소음과 비슷한 65dB(데시벨) 크기로 나도록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르면 내년 2월부터 새로 나오는 휴대전화는 모두 셔터소리가 날 전망이다.

그러나 정통부의 정책은 그 어머니의 공포와 분노를 달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셔터소리를 의무화했다고는 하지만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정통부와 업체들간의 합의 사항일 뿐이다. 가령 제품을 구입한 뒤 전자상가 등지에서 셔터소리가 나지 않도록 제품을 개조해도, 제품 개조나 개조 제품 사용을 처벌하는 법 조항은 없다.

현행법상 공공장소에서 남의 모습을 허락 없이 단순히 찍기만 할 경우 처벌할 근거도 별로 없다. 사진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거나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 특정 부위를 찍었을 때는 민·형사상 책임이 따르나, 이는 사후에 밝혀야 할 일이어서 ‘안 걸리면 그만’이다.

정통부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디지털카메라 등에 의한 사생활 침해를 처벌하는 규정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사후 처벌보다는 사전 규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연장에서, 놀이공원에서, 교통사고 현장에서 가수나 가족, 파손된 자동차를 찍는 일반인들이 셔터소리를 거북해 할 리 없다. 우리 어머니들이 카메라폰을 봐도 몸이 굳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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