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5>오세정 교수

  • 입력 2003년 8월 17일 17시 39분


코멘트
사진제공 박창민씨
사진제공 박창민씨
“아인슈타인이나 우주 생성보다 철이나 나무에 관심이 많아요.”

서울대 물리학부 오세정 교수(50)의 전공은 물질의 성질을 다루는 고체물리이다. 오 교수는 고체물리 중에서도 신소재나 신물질 분야를 연구한다.

오 교수는 1998년 신물질의 성질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 한국과학상을 받았다. 물리학자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반도체를 비롯한 물질을 띠 이론으로 설명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띠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물질이 발견됐다. 새로 발견된 고온 초전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런 신물질의 성질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오 교수는 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그가 신물질에 몰두하는 목적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시절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감명 깊게 읽은 그는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선택할 때에도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오 교수는 “문과는 단순히 있는 것을 나누는 분야이고 이과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분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에도 그는 이론보다 실험에 관심이 컸다. 유학 초기에 물리학과에 있으면서 전자공학과 교수를 지도교수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또 스탠퍼드대에서 방사광 가속기를 사용하는 연구도 했다. 그래서 귀국 후에는 포항공대에 가속기가 설치될 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요즘 그는 신문이나 잡지에 이공계의 역할에 대한 칼럼을 쓰고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전략분과 내 과학환경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것도 과학자로서 실용적 삶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이공계 사람들은 조리 있게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이공계의 대변인으로 나선 것이다.

오 교수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고치려 애쓴다. 특히 그에게는 국제학계에서 한국과학자가 받는 홀대도 참을 수 없는 불만이었다.

“한국과학상을 받은 논문을 미국물리학회에 제출했는데 처음엔 퇴짜를 맞았어요.” 똑같은 연구를 담은 논문이라도 미국 하버드대의 과학자가 냈을 때와 한국 과학자가 냈을 때의 평가가 천양지차였다. 오 교수는 논문 심사위원이 자기 분야의 최신 흐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심사위원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심사위원은 바뀌고 논문은 통과됐다.

오 교수는 “혼자 잘하는 것보다 대학 전체가 좋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몇 년 전 서울대 물리학과의 승진 체계를 앞장서서 바꿨다.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외국사람으로부터 승진 평가를 받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교수들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현재 오 교수는 한국물리학회의 교육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잘못된 과학교육을 바로잡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중고등학교 물리 교과서는 엉망이라 전문가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들다”며 “영국 물리학회에서 출간한 교과서는 휴대전화에서 출발해서 자연스럽게 그 속에 든 물리를 설명한다”고 소개한다. 앞으로 재미있는 물리 교과서가 나와 더 많은 학생들이 물리에 흥미를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오세정 교수는▼

1953년 서울 출생. 중고등학교 때는 ‘싯다르타’와 ‘어린 왕자’를 감명 깊게 읽었고, 상대성이론을 재미있게 강의하던 괴짜 고등학교 물리 교사의 영향을 받아 물리학도가 됐다. 1975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81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3년간 미국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 1989년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1999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을 역임. 이어 1999년부터 서울대 내에서 복합다체계 물성연구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좌우명: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성의를 다하자

△감명 깊게 읽은 책: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 지식인을 위한 변명(사르트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