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그늘…디카 확산에 사진현상소 발길 '뚝'

  • 입력 2003년 3월 19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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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사진관을 운영해온 김선호씨(44·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지난달 말 사진관을 매물로 내놓았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필름현상 주문이 줄어들었고 임대료를 내기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사진 현상만으로 한달에 6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에는 월 150만원 선으로 뚝 떨어졌다.

김씨는 “초등학생까지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현실에서 필름을 현상하는 기존 사진관이 살아남기는 힘들다”며 “그동안 익힌 기술이 아깝지만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비디오대여점을 7년간 운영해온 노용호씨(35·서울 중구 황학동)도 며칠 전 벼룩시장에 가게를 내놓았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한달에 9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지난해부터 매출이 350만원을 밑돌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250명에 이르던 손님도 요즘은 평균 50여명으로 뜸해졌다. 7년 전 가게 인근 200m의 골목에 6개의 비디오대여점이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3년 전부터는 노씨 홀로 장사를 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의 거센 물결에 ‘아날로그 업종’이 하나둘씩 밀려나고 있다. 디지털 영상기기와 통신기기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이와 경쟁을 벌이던 아날로그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싼값에 대량보급되면서 사진관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인터넷과 부동산소식지에는 매물로 나온 사진관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진관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드물어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한국프로사진가협회 조흥국 편집부장(50)은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2000년 이후 기존의 필름현상소가 줄어들고 있다”며 “작년에는 한달에 20건 정도의 사진관 매물이 나왔으나 현재는 한달에 100여건 정도로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필름제조업체도 디지털카메라 보급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후지필름 디지털인화기팀 고기봉 대리(31)는 “지난해 필름 매출이 2000년에 비해 20%나 줄었고 사진인화기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 대도 팔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네마다 2, 3개씩 들어서면서 경쟁하던 비디오대여점과 시계방들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터넷 영화사이트를 통해 비디오 수준의 영화를 수백원에 볼 수 있는 데다 화질이 좋은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가 저가형으로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비디오대여업협회 조정원 회장(48)은 “1997년에 3만개에 이르던 비디오대여점이 현재는 8000여개만 남아 있다”며 “휴대전화와 DVD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아날로그) 비디오를 빌려보는 고객이 30%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24년간 성동구 성수동에서 금은방을 운영해온 강정임씨(54)도 전업을 생각 중이다. 99년 이전에는 한달에 40여개의 손목시계를 팔았지만 현재는 한달에 한 개 팔기도 쉽지 않기 때문. 탁상시계도 하루에 2, 3개 나갔지만 휴대전화가 자명종 역할을 하면서 요즘은 한달에 2, 3개로 급감했다.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 정명권 총무(28)는 “휴대전화가 시계 기능을 대신하면서 내수시장에서 시계 판매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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