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된 노인들 대부분 '영양불량'

  • 입력 2002년 2월 17일 17시 32분


2년 전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김씨(69)는 요즘 혼자 식사하는 것이 큰 고역이다. 아내가 살아있었을 때에는 때마다 식사를 챙겨주었지만, 혼자 밥상을 차려 먹으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날이 많다.

게다가 치아가 좋지 않아 딱딱하고 질긴 것은 씹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물이나 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데다, 허기진 상태에서 과식을 하기 때문에 소화가 잘 안된다.

몇 달 전부터는 어지러움증이 생겨 병원에 가니 ‘철분 결핍성 빈혈’이라며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실직한 아들에게 용돈을 달라고 손벌리기도 쉽지는 않은 입장이다.

청소년과 중년층은 영양 과잉으로 비만을 걱정하지만, 김씨처럼 영양 부족에 허덕이는 노인이 늘고 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노인은 집안의 ‘어른’으로 대접받으며 좋은 것을 먼저 먹는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핵가족화로 노인이 ‘영양 결핍층’으로 전락해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더욱이 이들 노인은 2차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어려서 가장 굶주렸던 세대이기도 하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최혜미 교수 등 5개대학 공동연구팀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전국 2660명의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인 영양실태 보고서는 혼자 사는 노인의 영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혼자 사는 65세 이상 남자 노인의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566㎉으로, 부인과 함께 사는 경우의 섭취량(1753㎉), 부인 및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의 섭취량(1851㎉)보다 200∼300㎉이나 적었다. 이는 영양학계가 권장하는 65∼74세 남자의 에너지 섭취량(2000㎉)에 훨씬 미달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배우자와 사별해 혼자 사는 노인일수록,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노인일수록, 치아 상태가 나쁜 노인일수록 영양 부족이 심각했다.

노인에게 에너지 섭취량보다 더 큰 영양문제는 비타민 B2, 칼슘, 비타민 A, 철, 단백질 등 필수영양소의 부족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실시한 국민영양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비타민B2 평균 섭취량은 권장량의 55%이고, 칼슘과 비타민A는 각각 권장량의 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양학자들은 권장량의 75% 미만을 섭취할 경우 ‘영양 불량’이라고 본다. 그런데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80%가 칼슘 불량 상태였으며, 노인의 78%와 79%가 비타민A와 비타민B2 불량 상태였다. 또한 전체 노인의 54%와 55%는 단백질과 철 불량 상태였다.

다시 말해 370여 만명의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최소한 절반 이상이 영양 불량 상태인 것이다. 칼슘이 부족하면 골다공증에 걸리고, 비타민 A가 부족하면 면역기능이 약화된다.

보건산업진흥원 국민영양팀장 김초일 박사는 “노인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칼슘이 많은 요구르트, 콩, 멸치, 그리고 비타민A가 많은 김과 당근, 또한 비타민 B2가 많은 우유와 달걀이 좋다”며 “특히 노인이어서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러 영양소가 많은 ‘떠먹는 요구르트’가 좋은 대안이다”고 말했다. 또한 치아가 나빠도 녹황색 채소와 과일을 믹서로 갈아서 먹으면 암, 순환기질환, 당뇨병 등 노인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초일 박사는 “노인의 영양 부족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나타나 정부가 독거 노인에게 자동차로 음식을 배달하는 서비스(Meals on Wheels)를 하는 곳이 많다”며 “영양 보충은 가장 효과적인 노인 건강 대책인 만큼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정부와 비정부기관이 함께 독거 노인에 대한 음식 배달서비스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양학자들은 28일 서울대 호암컨벤션센터에서 5명의 외국 학자 등을 초청해 노인 영양관리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을 갖는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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