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의 과학으로 본 세상]동물장기이식 자칫 '시한폭탄'

  • 입력 2002년 1월 8일 18시 31분


수천년 동안 인간은 동물을 먹고, 입고, 일 시켜왔다. 급기야 동물의 장기까지 빼내 환자에게 이식하는 ‘신세계’가 열리고 있다.

지난주 미국과 영국의 두 바이오벤처는 인체 이식 거부반응 유전자를 없앤 돼지를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탄생한 돼지 9마리는 모두 암컷. 수컷 돼지만 복제하면, 이들을 교배시켜 장기이식용 돼지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돼지는 사람과 장기의 크기가 비슷하다. 또 다산성, 짧은 사육기간 때문에 ‘장기이식용 동물’로 가장 기대를 모아왔다. 이식할 장기를 못구하고 있는 국내 8000여명의 환자에게 ‘돼지 장기’는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종(異種)간 장기이식’에는 ‘이종간 감염’이란 무서운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동물의 바이러스는 동물에 해를 끼치지 않지만,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더욱 문제는 동물 장기 이식 환자가 ‘움직이는 시한폭탄’처럼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하버드대 프리츠 바하 교수 등은 바이러스 감염 논란이 해소될 때까지 이종간 장기이식 임상실험을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요구하고 있다.

보통 바이러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생물에만 전염한다. 이를 ‘숙주 특이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부 바이러스는 여러 동물을 옮겨 다닌다. 독감이 대표적 사례. 독감 바이러스는 여름에 돼지 허파에 잠복했다가, 겨울엔 사람한테 옮긴다.

1918년 ‘돼지 독감’은 20세기 최악의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2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독감 바이러스는 돼지와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가 조합돼 만들어졌다. 3년 전에도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니파 바이러스가 말레이시아에서 117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결국 100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됐다. 에이즈 바이러스(HIV)도 1950년대 말에 ‘침팬지’라는 원숭이의 바이러스(SIV)가 사람에게 옮겨져 진화한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특히 돼지의 레트로바이러스(PERV)는 사람의 유전체에 끼워들어가 상주할 수 있어 위협적이다. 돼지 레트로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와 쥐에 감염된다는 것은 실험으로 확인돼, 1997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이 돼지 장기의 인체 이식을 일시 중단시키기도 했다.

인류는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면역체계를 진화시켜왔다. 하지만 동물의 바이러스와 싸워본 경험은 별로 없다. 따라서 일단 감염되면 무방비 상태로 급속히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 동물 장기 이식에 환자와 의사만의 합의가 아닌,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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