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벤처’ 사장 이종화씨 송년감회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8시 03분


“올해는 권력과 유착한 부도덕한 벤처기업인들이 나라 전체를 부패의 수렁에 빠뜨린 가슴아픈 한 해였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벤처기업 ㈜평산SI 이종화(李鐘和·37) 사장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기술과 땀의 소중함만 믿고 벤처산업에 투신한 지 5년.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올해만큼 벤처 기업인이란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경기 침체로 운영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 것보다 이 사장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벤처 기업인이라는 사람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 때문에 받아야 했던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었다.

평산SI는 고속도로 같은 인공 구조물에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굴뚝 벤처’로 통한다. 부친이 83년 건축자재 생산업체로 회사를 설립했지만 그가 합류한 뒤 친환경 엔지니어링 벤처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인천대 미대 출신으로 건축에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건축자재 생산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고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동물 통로 건설 공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신자재에 관한 외국 서적을 밤새워 읽고 미국과 유럽 등 공사 현장 100여곳을 돌아다니며 외국 기술을 익힌 그는 마침내 98년 국내 최초로 신토목자재인 ‘파형 강판’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건축 자재상에 불과했던 평산SI는 이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유망벤처기업으로 지정되며 연 매출 150억원, 순이익 10억원의 탄탄한 ‘기술 벤처’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벤처를 ‘바늘로 얼음 깨기’에 비유한다. 대기업이 망치로 얼음을 깬다면 벤처기업은 바늘로 얼음의 틈새를 부단히 공략해야 한다는 것. 이런 노력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잖아요. 쉽게 사업을 시작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벤처인들은 결국 그 권력에 발목을 잡히게 됩니다.”

각종 벤처 비리로 시끄러웠던 올해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벤처 기업인’ 대신 ‘신기술 사업자’라고 소개해왔다. 벤처 기업인이라면 껍데기와 거품만 있는 회사의 사장으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는 것.

“안타까운 것은 모든 벤처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지요. 벤처 대주주라고 하면 코스닥에 등록해서 돈만 챙기고 빠지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여기는 오해의 눈초리가 가장 참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올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각종 ‘게이트’는 어느 한 벤처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비뚤어진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사장은 “문제는 한탕주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다는 것”이라며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생각이 벤처기업가를 부도덕하게 만들고 여기에 권력까지 개입하면서 국가 경제에 큰 해를 끼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인지 이 사장의 새해 소망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벤처 기업인’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해보다 각오도 비장하다.

“새해에는 2001년의 고통을 발판으로 벤처에 대한 깨끗한 이미지가 사회 전체에 정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벤처인이 ‘비리의 대명사’가 아니라 한국 경제 중흥의 주역으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내년에는 저부터 두 배, 세 배 더 뛰겠습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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