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피플]"스크린은 좁다" 디지털영화 개척 조영호씨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36분


한국 영화사상 전국 관객 100만명을 넘게 동원한 감독은 어림잡아 10명 남짓.

조영호(曺英湖·27)라는 처녀 감독이 그 반열에 낀다면 아날로그 세대는 십중팔구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

관객이 마음에 드는 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인터랙티브 영화, ‘영 호프의 하루’를 찍어 기네스북에 올린 이. 각본 감독 주연 제작 등 1인 4역을 해 만든 이 영화로 관람객 100만명 이상을 끌어모은 이가 조영호다.

또 그는 투자회사들이 기업가치를 220억원 정도로 평가하는 벤처기업 네오타이밍의 대표다.

한국통신 코넷의 TV광고에 나와 “내 영화를 걸기엔 스크린은 너무 좁다”고 외치는 그 여자라고 말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올릴 수 있을까.

그가 영화를 거는 곳은 인터넷. 네오타이밍 사이트(www.neotiming.com)에 공짜로 걸기도 하고 판권을 받고 다른 사이트에 팔기도 한다.

영화를 찍는 도구는 35mm가 아닌 6mm 디지털카메라.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들면 그만이다. 필름도 필요 없다.

“화면이 뚝뚝 끊기고 소리가 웅웅 울리는 인터넷에 올리는 영화라면 6mm로 충분하죠.”

디지털 영화의 개척자인 조감독의 실험정신은 갈수록 날이 선다.

그는 세 번째 영화 ‘여름이야기’로 네트워크 영화라는 새 장르를 선보였다. 네티즌들이 두 개의 사이트에서 각기 다른 줄거리의 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고 주인공들의 취미와 관련된 사이트를 찾아 다양한 콘텐츠도 즐길 수 있는 형식. 이 영화의 관객도 50만명을 넘었다.

네티즌들은 왜 이런 영화에 열광할까.

“인터넷이라는 게 원래 데이터베이스(DB)와 개인을 연결해주는 거잖아요. 또 네티즌들은 능동적으로 뭔가를 찾구요. 그런 점에서 여름이야기는 네티즌들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조감독이 디지털 영화에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이유는 뜻밖이다.

“디지털 영화가 빨리 발전할수록 그 끝을 빨리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를 냅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가장 아날로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입니다. 디지털이 극단(極端)에 이르면 사람들이 아날로그를 다시 찾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공연 제의를 했을 만큼 연극을 향한 참을 수 없는 끼를 타고 났다. 대학도 서울예전 연극과를 택했다.

영화로 방향을 바꾼 것은 부모님이 집을 팔아 마련해준 돈 2억원을 들고 영국 유학을 떠나면서. 사업에 발을 들여 놓은 계기도 유학이었다.

“97년 11월 유학자금으로 독립영화사를 차렸어요. 그런데 그때 갖고 있던 돈으로 영화사를 운영하기에는 무리였어요. 그때 만든 필름은 상영도 못해보고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예술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죠.”

그는 벤처캐피털의 문을 두드렸다.

“약 8개월동안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창업투자회사 절반은 가봤을 거예요. 거절 당하고 나오는 문 앞에서 코피를 쏟은 적도 있어요”

그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창투사의 투자를 얻어 네오무비라는 두 번째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단기적인 매출만 재촉하는 창투사와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6월 세 번째 회사 네오타이밍을 창업했다. 벤처캐피탈은 처음부터 배제하고 변호사 판사 회계사 의사 등 엔젤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았다.

그에게 사업이야기를 물어봤다.

“올해 매출은 10억원으로 예상하는데 직원들 월급주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요. 내년에는 훨씬 좋을겁니다.”

회계장부는 3개월에 한번정도 들여다보지만 실무자들이 간파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한눈에 짚어낸다. IQ 150. 중학교 시절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 계수에는 일가견이 있다.

여자라서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불쑥 고교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 다닐 때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항상 1등을 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계주에서 딱 한번 졌어요. 달리는 중간에 체육복이 흘러내렸어요. 남자라면 팬티바람으로 뛰었을텐데…. 그 때 여자의 한계를 처음, 그리고 가장 크게 느꼈어요. 지금은 여자라는 생각 않고 살아요. 우리 회사에도 여직원모임이 있는데 저는 부르지도 않아요”

그는 2개의 독신주의자 모임에 나간다.

“하지만 결혼을 끝내 안할 자신은 없어요. 그리고 이만하면 신부감으로 100점 아닌가요.”

남보다 앞서 나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여자 조영후. 집안 배경을 알아보니 조금은 그를 더 잘 알듯하다.

한때 독일 화단에서 활동했던 진보계열의 화가 박영후씨가 그의 어머니. 진보계열 사회학자의 대표주자중 한명인 성공회대 조희연(曺喜聯)교수는 그의 삼촌이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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