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기술표준 정통부 속내는?…은근히 '동기식' 유도

  • 입력 2000년 9월 26일 18시 23분


“정부 때문에 혼란만 더 크다.”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의 기술표준 방향을 둘러싼 혼란을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가 오히려 부추긴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정통부가 겉으로는 업계 자율을 내세우고 있지만 동기식 채택을 유도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점차 강화,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25일에는 장관이 직접 나서 서비스 실시시기 연기 가능성까지 내비쳐 표준 논의를 더욱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

최근 일련의 기술표준 논의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정통부의 ‘갈팡질팡 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확정 고시한 사업추진 일정이 변경되고 2002년께 새 휴대통신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까지 불투명해지는 등 IMT―2000 정책은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으며 벌써부터 1, 2년 뒤의 잡음마저 우려되는 정도다.

특히 국산장비 채택을 위해 2002년 6월로 예정된 서비스 실시시기까지 1년 뒤로 미루겠다는 타협안도 빠른 상용화로 차세대 세계 통신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정책의 기본취지에 역행하는 것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통신업계에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안병엽(安炳燁)정통부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업계 자율에 의한 표준 결정을 강조해 왔지만 수수께끼 같은 말만 되풀이함으로써 정부 개입의 의혹만 증폭시켜왔다. “결정은 자율에 맡기겠다”면서도 항상 “동기식 사업자가 하나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해 모두 비동기식을 희망하는 예비사업자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해왔다. 25일 기자간담회에서는 “기술표준협의회의 의견을 가감 없이 수용하겠다”고 했으나 “업체 자율에 맡겼지만 산업육성이 제대로 안된다면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도 ‘산업육성’이라는 단어를 10차례 이상 사용하면서 “동기식과 비동기식이 함께 채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동기식 의지를 분명히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답답한 업체들로서는 “정부가 간섭을 하더라도 모든 걸 속시원하게 털어놓고 공개적으로 조정작업을 벌이는 게 낫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술표준협의회에 참가한 한 위원은 “도대체 정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두가지 기술방식의 균형 있는 발전을 고민하는 정통부의 고충은 이해한다”면서도 “정통부가 스스로 약속한 정책방안을 뒤집음으로써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거 PCS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빚어졌던 잡음을 피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간섭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술표준 결정권을 업계자율에 맡기든지, 아니면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소신으로 정부의 생각을 밀어붙이든지 정통부는 분명한 선택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안병엽 장관 IMT―2000 관련 발언일▼

▽3월18일〓투명,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업자 선정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겠다.

▽4월30일〓국가이익과 직결된다. 국제동향과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하겠다.

▽5월16일〓사업자 선정 일정은 예정대로 간다. 유발효과를 감안하면 올해 말까지 선정해야 한다.

▽6월26일〓모든 사업자가 비동기식을 선택하더라도 행정지도 등의 방식으로 동기식 사업자를 하나 이상 끼워 넣으려는 노력은 없을 것이다.

▽7월12일〓정부가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9월4일〓동기식과 비동기식을 모두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월14일〓업계 당사자들이 국익까지 고려해 기술표준 문제를 논의해 합의안을 마련해야한다.

▽9월25일〓기술표준을 민간업체 자율에 맡겼지만 나름대로 대응책을 강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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