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업계 '투톱경영' 새바람

  • 입력 2000년 3월 31일 20시 52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직원들은 최근 새로운 보고서 형식에 익숙해지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 연구소가 지난달 17일 이경봉 전 한국IBM스토리지사업본부장을 마케팅부사장으로 영입한 뒤 생긴 현상이다.

그동안 안소장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 직원들에게 3, 4가지의 보고서를 올리도록 해왔다. 보고서를 살핀 뒤 최종 의사결정은 안소장이 했다.

그러나 17년간의 세일즈맨으로 잔뼈가 굵은 이부사장은 직원들이 여러 상황을 살핀 뒤 최상의 선택을 내리게 하고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서를 제출토록 하고 있다.

▼옥션 인티즌등 업무분담▼

이런 현상은 비단 이 회사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최근 두명 이상이 기술개발과 경영의 책임을 나눠 맡으며 서로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공동 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급속한 성장을 통해 몸체가 커지다보니 창업자의 능력만으로는 회사를 끌어가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투톱 체제와 역할분담〓웹에디터업체 나모인터랙티브는 1월 김흥준 경인양행 사장을 영입, 경영과 마케팅 부문을 담당케 하고 기존 박흥호 사장은 기술개발에만 전념토록 했다. 전자상거래업체 인터파크 이기형 사장은 유종리 데이콤인력정책실이사를 공동사장으로 영입, 내부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신규 사업개발에만 신경쓰고 있다.

이밖에 인터넷 경매회사 옥션은 오혁 사장이 기술 및 해외사업부를, 이금룡 사장이 마케팅과 국내사업부를 나눠 맡고 있다. 허브사이트 인티즌도 박태웅사장은 사이트운영을, 공병호사장은 외부 제휴를 전담하고 있다.

▽내부융화가 문제〓공동경영은 벤처기업이 초창기를 지나 기업다운 모양새를 갖추면서 나타난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이 사업출발은 성공적으로 이뤄내더라도 사업영역을 확대하다 보면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에 대한 인식이 뒤따르기 때문.

▼전문경영인 융합이 관건▼

그러나 공동경영 체제가 성공하려면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대기업의 대변인으로 활약하던 공병호사장은 벤처직원들의 ‘특수한’ 의식구조를 따라가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공사장은 직원들을 이해하기 위해 오후 6시 이후엔 정장을 벗고 캐주얼 차림으로 어울리고 있다는 것.

인터넷 컨설팅업체 아이비즈넷 박병진 대표는 “야후가 세계적 인터넷기업으로 발전한 것은 전문경영인 팀 쿠글이 창업자 제리 양과 공동경영을 잘해온 덕택”이라며 “국내 벤처기업도 기술과 경영의 분리를 통한 공동경영 체제를 뿌리내려야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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