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주는 병원' 조심 하세요… 입원-수술실 병균 무방비

  • 입력 2000년 3월 21일 19시 34분


부산에 사는 이모씨(59·무직)는 93년 허리수술을 한 후 지난해 7월부터 다시 허리가 아파 종합병원에서 재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허리 치료를 하러 병원을 찾았다가 하반신 불구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정밀검사 결과 그는 수술실패증후군과 함께 ‘수술 후 감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씨의 경우와 같이 수술과정이나 병원 내 입원실에서의 감염에 의한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 허리 고치려다 하반신마비 ▼

음식점을 경영하는 김모씨(51)는 작년 9월 감기 몸살로 인근 병원을 찾아 엉덩이에 근육주사를 한대 맞았다. 주사를 맞은 직후부터 그 부위가 마비되는 증세를 보인 김씨는 결국 주사맞은 부위를 40㎝나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주사맞은 부위가 병원균에 감염됐다는 것을 알고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PC통신과 인터넷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상담을 해주는 드림정보센터(www.sago.co.kr)에는 한달에 5, 6차례 ‘병원 내 감염’에 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를 폐렴 환자와 함께 입원시키거나 수술도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세균이 침입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의사들도 자신이 모르는 새 원인불명의 병균에 감염되는 사례도 심심찮게 생기고 있다.

병원 내 감염은 몸 안에 들어가는 의료기기나 수술도구 등을 통해 MSRA라는 병원균에 감염되는 것이 대부분.

병원감염의 공통적 증세는 고열이 나면서 환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각종 수치가 급격히 낮아진다.

최근엔 MSRA균보다 강한 VSRA균(일명 슈퍼박테리아)이 발견됐다. 슈퍼박테리아는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치명적 병균. 실제로 이달 1일 서울의 모 종합병원에서 VRSA로 보이는 균에 감염돼 환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 '슈퍼균'에 목숨 잃기도 ▼

그러나 이처럼 빈발하는 병원감염 사고에 대한 병원측과 보건당국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보건당국은 80병상 이상의 병원에 대해 ‘병원감염관리준칙’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권고사항에 불과해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병원들이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수많은 환자가 몰려 감염 위험이 더욱 높은 종합병원에서도 감염관리과 등 전문 부서를 둔 곳은 손꼽을 정도다.

삼성의료원 감염내과 송재훈(宋在焄)박사는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세균들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며 “병원감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병원-보건당국 대책 외면 ▼

1국립보건원 양숙자 연구원은 “감염관리 간호사 등 전담 인력을 둔 병원도 얼마 없지만 담당 간호사도 여러 가지 다른 일이 맡겨져 감염관리에만 치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병원감염문제는 병원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이라며 책임을 병원측에 미루고 있다. 국립보건원 김봉수 감염관리과장은 “미국에서는 질병관리센터(CDC)의 감염관리 프로그램에 160여개 병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아직 병원측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병원 스스로 감염관리를 하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병원감염관리학회 최강원(崔康元)회장은 “감염 관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병원에는 보험수가를 인상해주는 등 실질적 인센티브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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