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닥터」안철수, 「V3」거액 유혹 뿌리쳐

  • 입력 1998년 1월 13일 20시 04분


‘천만불의 사나이’를 아는가. 달러가치가 하늘 모르고 치솟고 돈벌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 1천만달러의 유혹을 뿌리치고 한국 컴퓨터산업의 장인(匠人) 정신을 꼿꼿이 지켜낸 사람. 그가 바로 ‘컴퓨터 의사’로 우리에게 친근한 안철수씨(36)다. 컴퓨터의 골칫거리인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 소프트웨어 ‘V3’를 개발한 그는 서울대의대에서 전기생리학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진짜 의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바이러스 백신 ‘스캔’으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맥아피사가 그를 돌연 초청했다. “백신 ‘V3’를 우리에게 팔라. 1천만달러(약1백80억원)를 주겠다.” 맥아피의 빌 라슨회장이 직접 설득했다. 맥아피는 당시 일본의 유일한 백신 소프트웨어 ‘제이드’를 사들여 놓은 상태. 한국의 대표적인 백신 소프트웨어까지 차지한다면 세계 백신 시장을 단번에 거머쥘수있다는계산을 했을 터. 달콤한 유혹. 불법복제가 판치는 한국에서 백신 소프트웨어를 팔아 이런 큰 돈을 만지기는 쉽지 않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도 이 돈이면 평생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랑이띠인 이 사내의 답변은 “노(No)!” “늘 변하는 컴퓨터가 좋아요. 백신 소프트웨어로 세계 최고가 될 겁니다.” 이것이 그가 1천만달러의 유혹을 떨쳐낸 너무 평범한 이유다. 21세기 주력산업으로 떠오른 소프트웨어 분야를 그마저 외국에 팔아치울 순 없었다. 안박사는 지금 최근 전세로 구한 서울 가락동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지난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공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도 한달에 한두차례 한국을 오가며 서초동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일을 병행하는 억척스러움을 부렸던 탓이다. 그래서 ‘컴퓨터의사’이자 의학박사인 그가 난생 처음으로 과로성 급성 간염으로 쓰러져 지난해 연말 한달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우연의 일치지만 우리 경제가 아프니까 저도 아프더군요.” 2월말이면 완쾌할 것이라는 그는 이미 제삼세대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했다. 암호명 ‘양말네짝’이라는 좀 희한한 이름의 프로젝트 등 모두 10여 가지의 차세대 백신 개발을 극비리에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든 소프트웨어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는 해커보다 한발 앞서 차세대 악성 바이러스와 싸울 무기를 구상해낸 것이다. ‘적’에게서도 배웠다. 그는 맥아피의 제의는 거절했으나 라슨회장이 직접 그에게 브리핑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일하는 모습만은 놓치지 않았다. 늘 오전 3시에 일어나 컴퓨터를 만지며 일해온 젊은 의사 안철수씨. 집에서 요양하며 거의 처음으로 외동딸 설희(9)가 뛰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설희의 함박 웃음이 터질 때마다 그는 ‘딸에게 IMF한파 같은 비극은 물려주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한국에는 아직 ‘희망’이 꺼지지 않았다. 〈김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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