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저작권]현실서 가치담아 가상서 정보판다

  • 입력 1997년 11월 8일 09시 23분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가 89년 「코르비스(Corbis)」사를 세웠을 때만해도 세계는 반신반의했다. 「모든 종류의 인간경험물을 디지털로 제작해 판매한다」는 사업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확실히 떠오르지 않았던 상황. 「코르비스」는 「가치있는 물건들이 담긴 바구니」라는 라틴어 단어. 한동안 잊혀졌던 이 업체는 95년 두건의 계약 체결로 갑자기 화제로 떠올랐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예술가로 손꼽히는 사진가 앤설 애덤스의 작품에 대한 디지털권리를 사들여 이를 CD롬으로 제작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 텍사스의 「킴블 예술박물관」 소장품을 디지털화하는 내용이었다. 이 업체는 디지털 내용물이 가까운 미래에 거대한 규모의 비즈니스로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10∼20년에 걸친 장기계약을 하고 이미지를 가능한 한 많이 축적, 가공하고 제품화하고 있다. 얄타회담에 참석한 3개국 국가원수 사진으로부터 라스코 동굴벽화에 이르기까지 1백만건에 달하는 이미지를 확보해놓은 상태. 최근 인터넷상의 「세계여행」사이트는 이 회사가 벌이고 있는 사업의 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접속하면 수백만명이 별도의 회원료를 내지 않고 컴퓨터앞에 앉아 지구 곳곳의 명소를 방문할 수 있다.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저작자의 표현을 담는 전달매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해왔다. 과거 저작물은 현재와 같이 디지털정보가 아닌 종이나 음반같은 매체의 유통을 전제로 한 것. 그러나 멀티미디어 혁명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을 통해 전세계의 다양한 전문적 정보를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복제의 형태도 간단한 컴퓨터작업을 통해 대규모로 손쉽게 이뤄진다. 전통적인 복제방법이나 유통방법을 전제로 한 현행 저작권개념이 이젠 적절한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디지털저작권은 책 음반 등에 대한 고전적 저작권과는 별도로 설정되는 새로운 저작권 개념. 컴퓨터 통신이나 CD롬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고 이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부여하는 것. 디지털저작권 보호 범위를 둘러싼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기위한 논의도 최근 활발히 진행중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10여년전부터 이같은 변화를 예견하고 대비해왔다. 이들은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저작권 질서를 구축하는 한편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자국의 이익을 보호, 확대하기 위한 다자간 협정체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후원으로 열린 세계저작권 전문가들의 정부간 외교회의가 그것이다. 이와 별도로 클린턴 행정부는 94년부터 정보소유자들에게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를 주는 내용의 저작권법에 대한 개정 준비작업을 벌여왔다. 반대론자들은 이러한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컴퓨터통신을 통한 자료검색조차 복제행위로 규정돼 인터넷을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다. 디지털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도 주된 논란거리. 최근 미국내에서 전화번호부를 디지털로 편집한 업자가 이를 저작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 대법원에서 기각된 사건은 유명하다. 저작권법 개정 움직임과 별도로 「기술」로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레이저기술로 저작물의 복제 변경여부를 표시하는 「디지털 서명」이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메시지를 저작물안에 묻는 「디지털 지문」 등이 대표적. 그러나 국내의 디지털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극히 미미한 상태다. 정부는 「멀티미디어시대의 저작권」을 주제로 지금까지 두차례의 공청회를 열었으나 일반인들의 인식은 극히 저조하다. 단적인 예로 국내 음반업체나 음악인들은 「온라인을 통한 음악배급이 음반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근시안적 태도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최근 「N2K」라는 미국의 한 음반업체가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공급하면서 레코드점이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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