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일점호화소비와 관광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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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올 2분기(4∼6월) 우리 국민들이 해외관광에 쓴 돈은 사상 최대였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분기 해외관광 지출액은 통계 처리가 시작된 1975년 이후 가장 많은 50억1850만 달러(약 5조1690억 원)로 집계됐다.

반면 우리 국민의 국내관광 지출 실적은 초라한 수준이다. 국내관광에서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61%에 불과했으며, 올해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내국인 국내관광 비중은 70∼90%에 이른다.

모두들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비싼 해외여행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열악한 국내관광 여건과 ‘일점호화소비(一占豪華消費)’란 키워드가 합쳐져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점호화소비란 원래 거품 붕괴 시기의 일본에서 생겨난 말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지만 소비 욕구를 마냥 참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전반적인 소비지출을 줄이면서도 특정 부문에서는 ‘폼 나는’ 고급 소비를 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국내의 관광 여건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연휴나 휴가기간에는 자칫하면 길 위에서 시간을 다 보내야 한다. 휴가지에 도착해서는 밀려드는 인파와 바가지요금 탓에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가져간 그늘막을 치려 할 때 파라솔 대여업자들에게 “우리가 허가받고 영업하는 땅이니 나가라”란 소리를 들으면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만 더 아껴서 일년에 한 번뿐인, 그렇잖아도 짧은 휴가에 통 크게 한번 투자하자’는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엔 항공료와 철도요금, 숙박료 등 국내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조금만 돈을 더 쓰면 해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된다. 일점호화소비 트렌드가 끼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점호화소비는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 때 생겨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불황기에 비즈니스 기회를 잡아내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전반적인 지출을 줄여 특정 부문에만 소비를 집중하는 현상은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로케팅’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바 있다.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사람들은 ‘작은 사치’에서 행복을 찾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회를 잡아내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트렌드는 여러 흐름의 교차점에서 생긴다는 점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일전에 만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해외여행사와 백화점 푸드코트만 장사가 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색다른 경험’과 ‘색다른 입맛’이란 소비자 취향이 일점호화소비와 만나 인기를 얻고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백화점들은 최근 잇달아 동네 맛집들을 유치하며 재미를 보고 있다. 반면 국내여행 산업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소비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면 불황에도 탈출구가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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