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56>버려진 집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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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집에서
―복거일(1946∼ )

입 다문 소설(小雪)의 하늘
돌쩌귀 하나로 걸린 문짝의 나섬,
테만 남은 물동이가 대담하게 소묘해주는
목적의 틀,
마른 풀줄기들 사이 팔 없는 펌프의
좀 어색한 단아함―
재생의 단계를 넘어선 것들의
자부심에 가까운 몸짓들 앞에선
늙어가는 목숨이 아니더라도
경외의 몸짓이 어색하지 않으리라.

사람은 깊은 자국을 남긴다.
벌써 지붕을 뚫은 황무(荒蕪)는 결국 이기겠지만
사람의 자취를 말끔히 지울 수 있을까?
숨결을 불어넣는 것처럼
사람은 만진 것들에 완강함을 남긴다.
그 생각은 어쩐지
위안보다는 절망을 불러낸다.
그래도 절망은 지녔다
허무의 흐릿한 선과는 다른,
든든할 만큼 단단한 얼굴을.

나에게선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허물어진 돌담 한구석
덜 불편한 자세로 돌아눕는 돌의
과묵한 소리가 들린다.
하긴 새로워질 수 없을 만큼 짙은
절망은 없다.
믿음의 따스함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이 허름한 풍경
그래도 햇살은 새로운 욕망들을 깨워서
그림자 문득 또렷해진다.


전아한 산문으로 그림과 시를 이끄는 3중주(三重奏) 같은 책, 복거일의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들’은 페이지마다 깊고 아름다운 생각과 마음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다, 삶은 이어진다. 아무리 재앙의 골짜기가 깊어 보여도, 삶은 그 골짜기를 지나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어려운 시절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멀리 보아야 한다’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선생은 문제에 매이기보다 그걸 풀 방도를 생각하는,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이성적인 현실주의자다. 그런데 미래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건, 당장 현재만 움켜쥐고 있는 현실주의자가 득세하는 부박한 현실에서 얼마나 이상주의적인가. 이 독특한 현실주의자가 ‘현실’을 옹호하는 전망을 발랄한 지성으로, 그러나 완강히 보여주는 사회비평 산문만 읽은 이들은 그의 시에서 배어나는 페이소스가 색다를 테다.

남자들은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제 늙음을 느끼는 것 같다. 늙은 것도 서럽거늘 생활의 안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찌그러져 있다. 어르신들은 병들고 아이들 앞날은 불안하고, 제 노후도 대책 없는 우리들 오십대.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의 따스함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화자의 절망감이 버려진 집의 허름한 풍경에 버물린다. 젊은 날 열심히 산 이들은 그 자부심으로 단단할 수 있으리라.

황인숙 시인
#버려진집에서#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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